[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소득을 따져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놓고 또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달 중 부동산 시장 추가대책 발표에서 DTI 규제 완화를 제외한 극히 제한적 범위 내에서만 그칠 것을 시사했다. DTI 규제를 완화하기에는 여전히 '가계부채'가 부담된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건설·부동산업계 등은 DTI 규제를 완화하면 얼어붙은 주택거래가 활성화 되고 오히려 가계빚이 줄어들 것이라며 DTI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 DTI '규제'..가계부채 우려·거래 활성화 의문
7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은 DTI 규제 완화시 가뜩이나 위험 수위에 다다른 가계부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신중한 입장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방문한 필리핀 마닐라에서 기자들과 만나 "DTI 규제 완화에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며 조만간 발표될 부동산 활성화 추가 대책에 DTI 규제 완화가 제외될 것임을 나타냈다.
재정부는 그 동안 가계부채를 이유로 DTI 완화 요구에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900조원을 넘어서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지적된 현실을 감안할 때 가계부채의 위험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SEAN+3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가장 중요한 것은 완화 조치로 인해 (부동산) 경기가 정말 살아날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DTI 규제를 완화해 대출 한도를 자유롭게 하더라도 앞으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상황에서 대출이자를 감당하고 주택을 구입하려는 실수요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냐는 것.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담보대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DTI 규제가 과도한 가계대출을 억제하는데 제어장치 수단을 해왔다"며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DTI 규제 완화는 가계부채 증가 우려가 있으며 DTI 규제가 부채 급증으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DTI와 같은 부동산·금융정책을 부동산 경기에 따라 완화했다, 규제했다 하는 부동산경기 활성화 정책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업계, DTI 규제 '완화'..오히려 가계빚 줄어
반면, 건설·부동산업계에서는 주택 거래량이 200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침체된 주택거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DTI 규제 완화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형건설사로 구성된 한국주택협회는 최근 'DTI 폐지시 기대효과'라는 보고서에서 "서울과 수도권에 적용되고 있는 DTI를 10%포인트 상향 조정하면 주택수요가 1.4% 증가할 것"이라며 "DTI를 폐지하게 되면 실수요자의 주택구매심리를 촉진시키고 주택거래를 활성화시켜 시장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신규주택 계약자가 기존 소유 주택을 팔아 분양대금을 마련하려 할 때 DTI 규제가 기존주택 거래를 막아 중도금 및 잔금 납부가 어려워져 계약포기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면서 "DTI 규제를 폐지하더라도 주택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투기열풍은 오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DTI 규제로 기존 아파트 거래는 물론 신규아파트 거래까지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DTI 규제가 완화되면 가계부채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DTI를 완화해 주택거래가 활성화되면 빚내서 구입한 집이 팔리지 않아 막대한 이자를 물고 있는 '하우스푸어'의 대출 탕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DTI 폐지시 가계부채 확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오히려 그 동안 집을 팔지 못했던 사람들이 거래 활성화로 집을 팔 수 있게 돼 가계부채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DTI 규제타당성 검토' 보고서에서도 "DTI 규제 이후 담보대출은 줄었지만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은 오히려 늘어났다"며 "DTI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던 지난 2010년 8·29대책기간(2010년 8월~2011년 3월)과 DTI 적용비율을 다시 강화한 2011년 3·22대책(2011년 4월~2011년 11월) 이후 기간 사이 가계대출과 주택가격 등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 자율화 기간 동안 가계대출은 3조851억원 증가했지만 규제강화 이후 기간에는 3조5688억원 늘었다"고 밝혔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주택담보대출이 아닌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 증가가 두드러져 오히려 가계대출 안정성이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DTI 규제로 인한 가계대출 억제 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권 실장은 "현 시점에서 DTI 규제는 수명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계의 신용위험을 증가시켰다"며 "강남 3구를 비롯한 DTI 규제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