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대법관
이제 6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작별인사를 드릴 시간입니다.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동료 대법관님, 그리고 사랑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배려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6년 전 영광스런 부름을 받고 대법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법치주의의 확립은 나라 발전의 기본이고, 이를 위해서는 법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검사로서 쌓아온 경륜과 가치관으로 법원의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제가 검찰에 오래 봉직하였지만, 검사든 판사든 법률가로서 공정과 형평의 잣대로 정의를 구현하는 데 차이가 없다고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대법관으로서 대법원의 이방인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을 형성하는 주체이고, 여러분들과 같은 식구라는 의식으로 저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밀려오는 사건속에서 무엇이 올바른 법인지를 선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때로는 능력이 부치는 것이 아닌지 회의할 때도 많았습니다.
산더미 같은 기록과 연구보고서 속에서 때로는 고심의 밤을 보내고, 대법관들과 열정적인 토의를 하면서, 판결문 문구까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추억들이고 영광스런 소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법원 가족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대법관으로서 누렸던 명성과 영광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여러분들의 사랑과 헌신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짧지 않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세상은 변하고 또 변했습니다. 바야흐로 가치관이 혼재된 사회가 되었고, 정의를 어느 하나의 잣대로 재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세상에서, 국민들은 법관이 마땅히 분쟁의 최후의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 작은 목소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법관의 삶, 그에 대한 평가는 단 하나의 사건에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마음에 새겨 두고 재판 한건 한건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 법관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법관은 한없이 낮은 자세를 유지하여야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한없이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유지하여야만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은 고매한 인격을 갖춘 법관으로부터 자상하고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재판을 받고 싶어합니다. 법관은 법이론뿐만 아니라 폭넓은 인문사회적 지식, 그리고 대중문화까지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과 법정에서 뒤돌아 인생을 음미할 만한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현실감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법관들이 밤늦게까지 그리고 휴일에도 업무에 매진하여야 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지켜보았습니다. 대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점이 제도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바른 재판을 위해서도 법관들의 이와 같은 과중한 업무가 경감되어, 생활세계의 생생한 직관 속에서 사건 하나하나에 대하여 충분한 논증을 할 수 있는 물적?제도적 토대가 갖추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제 하직을 고하고자 합니다.
저는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법원과 검찰 가족들,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실력과 제가 이룩한 성과에 비하여 과장된 평가를 받아 왔고, 제 마음 한 켠에는 항상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에 스스로를 한 없이 채찍질하였으나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을 깨달으며 어느덧 대법관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부디 국민과 역사 앞에 커다란 흠결이 없는 대법관 생활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간 저를 사랑하고 보살펴 주신 여러분들께 한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들로부터 받은 커다란 사랑을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하여 나누어 드리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법원가족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 7. 10. 대법관 안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