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일렉트로닉은 대중문화의 최근 트렌드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다. 빅뱅이나 f(x) 같은 아이돌 그룹들의 최신곡은 대부분 일렉트로닉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강남 지역에는 대형 일렉트로닉 클럽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중이다. 세련되고 중독성있는 비트와 더불어 LED와 레이저 등 강력한 비주얼을 무기로 일렉트로닉 음악은 대중에 강력히 소구 중이다.
감각적인 비트와 비주얼 때문에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오해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가장 큰 편견은 춤 추기 좋은 클럽용 음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일렉트로닉 장르 중에서 유독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무한번식 중인 일렉트로닉 음악의 기저에는 오락성, 통속성, 상업성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음악'이라는 오해도 있다. 디지털 신호를 활용하는 미디(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중심으로, 전자적 신호를 통해 파생된 음을 사용해 만든 음악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전자음 때문인지 일렉트로닉 음악이란 장르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
하지만 일렉트로닉 씬의 대표주자 디구루의 공연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나볼 수 있었다. 디구루가 최근 LIG아트홀에서 선보인 단독공연 '매일의 반복, 일상의 변주'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감각에만 소구하는 게 아니라 지성을 자극하며, 또한 때때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대 위에는 수십개의 사각 프레임이 격자무늬를 이루며 관객석을 향해 놓여있다. 정면에도 작은 크기의 사각 프레임이 수십개 위치한다. 사각프레임 하나하나는 비트를 상징한다.
비트를 다루는 디구루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무대 설정이다. 수많은 사각 프레임에는 디구루의 음악에 싱크된 영상과 조명이 실시간으로 비춰지며 뮤지션의 머릿 속 음악지도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리듬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에 관객은 빠져든다. 리듬과 멜로디의 반복으로 이뤄진 음악의 구조를 확인하며 지적인 자극을 받고, 반복을 통해 몰입한다. 무한반복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변주를 통해 카타르시스도 체험할 수 있다.
디구루는 공연 도중 "모든 생명체는 비트를 가지고 있다. 비트가 없다면 그건 죽음에 이르렀다는 뜻"이라며 비트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소개했다.
공연 중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렉트로닉 음악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미디어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악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디구루는 공연말미 '방사능을 중단하라(Stop radioactivity)'라는 직설화법도 불사하며 리듬과 비트의 카타르시스 속에 오묘한 광란의 도가니를 만들어냈다.
음악은 소통의 추상적인 가능성을 넘어설 때 사회적 도구로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디구루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뮤지션이다. 그의 활약이 일렉트로닉 씬의 진정한 폭발, 사회적 폭발로 이어질 수 있을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