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룰을 결정하는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문재인 후보와 비문재인 후보 진영 간에 '결선투표제 도입'을 놓고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18일 당무회의를 열고 경선룰을 결정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러자 손학규·정세균·김두관 후보 측은 17일 "당 지도부는 경선룰을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결정해서 안된다"며 "후보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 지도부와 후보자들간의 합의안 도출을 위해 진지하고 공개적인 토론회를 요청한다"며 "빠르면 내일이라도 당 경선기획단, 지도부, 후보자 대리인이 나와서 토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이들은 새누리당이 경선 룰을 놓고 박근혜-비박진영으로 갈라져 논란을 일으킨 끝에 종전 규정대로 경선을 치르기로 한 것에 빗대어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이해찬 대표는 17일 오후 5시 각 후보측 대리인들을 불러 견해를 청취한 뒤 저녁 늦게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당 지도부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경선 룰 논쟁, 새누리와 민주의 같은 점
현재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문재인 캠프와 박근혜 캠프의 대응방식은 비슷해보인다.
일단 두 사람 모두 당내에서 가장 앞서가는 선두주자다.
새누리당의 박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이다. 여론조사에서 당내 경쟁자들은 물론이고, 당외 경쟁자들에게도 한번도 뒤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세론을 구가하고 있다.
4.11총선을 앞두고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문 후보의 경우 박 후보 정도는 아니지만 민주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손꼽힌다.
지난 12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 조사결과 43%의 지지율로 민주당에서 선두로 나서고 있다. 이어 손학규 후보가 15.4%, 김두관 후보 11.9%, 김영환 후보 3.4%, 정세균 후보 2.5%, 박준영 후보 2.4%, 조경태 후보 1.2% 등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와 문재인이라는 강력한 후보들에 맞서 새누리당의 이재오-정몽준 후보가, 민주당의 손학규-정세균-김두관 후보가 경선 룰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외형상 닮아 있다.
그리고 여타 후보들의 경선 룰 변경 요구에 대해 기존 경선 룰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닮아 있다.
새누리당은 결국 당 지도부에서 종전 경선 룰을 그대로 적용하기로 하면서 이재오-정몽준 후보가 경선 불참을 선언하는 것으로 논란의 막을 내렸다.
민주당 역시 현재까지는 종전 경선 룰을 그대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 경선기획단장인 추미애 의원은 17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결선투표제 도입과 관련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며 "최고위원회의에 정치적 판단을 위임을 했다"고 밝혔다.
일단 경선기획단에서 준비한 종전 방안을 적용하되, 당 지도부에서 정치적 판단으로 결선투표제 도입을 결정하면 따르겠다는 취지다.
이에 김두관 후보는 17일 평화방송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결선투표제가 거부될 경우 경선 불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룰에 대해서 공동으로 의견을 냈던 손·정 고문 측과 협의를 해봐야 될 사항"이라고 답변해 경선 불참 가능성을 열어놨다.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외형을 보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경선 룰 논란은 많이 닮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선 룰 논란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불통과 오만'의 이미지를 얻은 것처럼 문재인 후보도 비슷한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경선 룰 논쟁, 박근혜와 문재인의 다른 점
그러나 내용을 놓고 보면 차이가 있다.
우선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명실상부한 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황우여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해 강창희 국회의장, 이한구 원내대표에 이르기까지 '친박근혜' 일색으로 권력을 장악한 상태다. 5명의 선출직 최고위원의 경우 심재철 의원을 제외하고는 친박 일색이다.
물론 민주당도 외관상으로는 비슷해보이기는 한다. 우선 문재인 후보와 가까운 이해찬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고, 호남지역의 박지원 원내대표는 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이박연대'가 표출되면서 당 대표와 원내대표 모두 문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손학규 후보는 17일 MBC 뉴스광장에 출연해 "당내 당권파인 친노패권주의 세력이 자기 반성을 하지 않고 당권을 장악했다"며 "결국은 대선에 나가서 지는 것이 뻔한 이 길을 택하는 것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완전히 친박근혜로 장악된 반면 민주당은 문재인 후보가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이 다르다.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모두 5선과 3선의 관록의 정치인이다. 초선에 불과한 문 후보가 당내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다.
더구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지지성향 분포를 보면 각 후보마다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25명까지 지지의원을 확보, 어느 후보에게 기울어졌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아직까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의원들이 다수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거의 모든 의원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새누리당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특히 당내 대의원과 당원들의 지지성향에서도 차이가 난다.
박근혜 후보가 소속 의원들 뿐만 아니라 당원과 대의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문재인 후보의 당내 기반은 취약하다. 오히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당원과 대의원들의 지지가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해찬 대표도 당원 투표에서는 김한길 최고위원에게 밀렸지만 일반 국민들이 참여한 모바일 투표에서 역전극을 펼치기도 했다.
◇완전국민경선, 박근혜는 거부하고 문재인은 선호하고
결국 논쟁의 핵심은 결선투표제가 아니라 완전국민경선을 둘러싼 논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후보에게는 완전국민경선제가, 당내 기반이 일정 정도 있는 후보에게는 제한적인 국민경선제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재오-정몽준 의원은 취약한 당내 기반을 만회하기 위해 완전국민경선제를 주장한 반면, 확고하게 당을 장악한 박근혜 의원은 완전국민경선제를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가장 앞서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당내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어서 완전국민경선제를 선호하고, 당원과 대의원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한 후보들 입장에서는 완전국민경선제보다는 일반 국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경선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결선투표제의 논란은 실제로는 완전국민경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축약할 수 있다.
실제로 손학규-정세균-김두관 후보는 ▲결선투표제 실시 ▲국민배심원제 도입 ▲현장투표, 모바일투표, 국민배심원 투표 반영비율 1대1대1 ▲당원 대상 예비경선(컷오프) 실시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방안은 지역순회방식 완전국민경선제와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반 국민들의 한 표보다는 당원과 대의원들의 표가 더 큰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완전국민경선은 당원과 대의원, 일반국민의 표가 모두 같은 가치를 갖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결선투표제 자체에 대해서는 각 후보들 모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측도 명시적으로 결선투표제를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게 공식입장이다.
즉 당 지도부에서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 그대로 실행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경태, 김영환 후보는 손학규-정세균-김두관 후보와는 다소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결선투표제를 주장하는 세 후보가 경선에 불참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완전국민경선제를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으로 내세운 민주당이 제한적 국민참여경선으로 가게 될 경우 오히려 새누리당과 비슷해진다는 점이 부담감으로 남아 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완전국민경선제로 두 번의 선거를 치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정치일정상의 문제도 있다. 또한 결선투표제가 경선 열기를 끌어올리게 될지, 아니면 피로감에 의해 열기를 가라앉게 만들지 알 수 없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모바일 투표에 대해서도 각 후보 진영마다 다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문 후보가 가장 선호하는 반면 다른 후보들은 모바일 투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민주통합당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모바일 투표 도입과 국민참여경선의 확대라는 원칙에 모두 동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당헌-당규가 만들어져 당 대표 선거까지 치른 상황이라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각 후보마다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국민경선, 제한적 국민참여경선, 모바일투표, 결선투표제, 컷오프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문제는 어떤 조합으로 경선을 치르게 될지 여부다.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적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