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박수연기자] "여름은 수영복 특수철이잖아요. 그런데 작년보다 매출이 15%나 줄었어요. 울며 겨자먹기로 할인을 해도 도통 고객들이 보이지가 않아요."
본격적인 피서철을 맞아 한창 특수를 누리고 있어야 할 명동 롯데백화점 수영복 매장. 지난달 29일 종료된 세일기간을 오는 12일까지 연장, '20% 특별할인'까지 더했지만 좀처럼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전통시장 등 너나할 것 없이 연일 할인행사와 프로모션을 열어 고객끌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위축된 소비심리 탓에 웬만해선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 잔뜩 움츠러든 소비심리는 텅 빈 장바구니와 한산한 발길로 이어졌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동기 대비 1.5% 상승하며 호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4.5%)이 워낙 높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도 컸지만, 2000년 5월(1.1%)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오름폭을 보였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안정세에 접어든 통계지표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불안한 심리가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고, 이는 또 다시 불황과 소득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내수는 이미 '바닥'이었다.
◇'텅 빈' 백화점, 불황 모른다는 명품매장마저…
2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개점 시간을 30분 앞두고 소비자들이 하나 둘 문 앞에 모여들었다. 서른명 남짓한 고객들이 개점을 기다렸다. 백화점 세일이 시작된 지난 6월28일 인산인해를 이루던 정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하 1층 신선식품 채소류 코너를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은 뜸했다. 채소류 코너 담당자는 "지난달과 비교할 때 이번달 들어 특히 손님들이 줄어든 것 같다"며 "채소 가격엔 변화가 없는데 휴가철이라 그런지, 날이 더워선지 고객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2층 여성의류 매장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획상품전과 이월상품전을 진행 중인 행사장에서조차 옷을 걸쳐보는 고객은 많지 않았다. 매장 관계자는 "세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숨 지었다.
◇2일 명동 신세계백화점 여성의류 코너의 한산한 모습
서울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구두 브랜드 에스콰이어 판매사원은 "우리 매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7월 매출이 10~15% 감소했다"며 "구매가 줄어들다보니 제품의 질을 높이려고 좋은 자재를 썼고, 그러면서 제품가격이 상승한 것이 매출 감소의 원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백화점 1층에 위치한 명품 매장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이 또한 대부분 중국, 일본, 홍콩 등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이었다. 불황을 모른다는 명품 코너에서조차 국내 소비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롯데백화점 프라다 매장 관계자는 "국내 고객들에 비해 외국 고객의 구매 비중이 상당히 높다"며 "특히 중국 손님의 구매가 많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루이비통이나 구찌 같은 타 명품매장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형마트, 각종 프로모션·반값 할인에도 발길 '뚝'
서울역 인근의 롯데마트는 최고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입지 탓에 오가는 여행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그나마 활기가 있었다. 그러나 매출 하락의 폭탄은 피해갈 수 없었다.
신선식품과 유제품, 가공식품, 생필품 등 각 코너마다 '금주의 할인상품' 광고를 크게 걸어놓고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지는 못했다.
특정 제조사의 제품을 2만5000원 이상 구매하면 5000원 할인권을 증정하는 행사도 병행하고 있었지만, 지갑을 여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고 매장 관계자는 전했다.
육류매장 관계자는 "올 들어 고객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체감한다"며 "심지어 주말에도 손님이 별로 없고, 구경만 하다 가는 사람도 눈에 띄게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발길이 뜸한 신선식품 코너(롯데마트 서울역점)
반면 이 와중에도 김과 김치를 비롯한 '관광객 전용상품' 코너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전통 재래김을 판매하는 담당직원은 "외국인 고객들의 구매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의 구매가 큰 폭으로 줄면서 전체 매출은 소폭 줄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덕에 그나마 먹고 산다는 얘기다. 다른 코너 판매자들 또한 한목소리로 극심한 소비 침체를 탓하며 매출을 걱정했다. 손님들이 있어야 흥이 돋는 유통현장에 소비자들보다 매장 판매직원들이 더 많은 이색적 풍경이 매일 이어지고 있었다.
◇남대문시장, 외국인 손님은 있지만…불경기·무더위에 '울상'
볕이 뜨거운 오후 1시, 남대문 시장에선 부채질하는 상인들의 손놀림만 바빴다.
그나마 시장에서 눈에 띄게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은 가방과 신발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었다. 가격 흥정을 하는 사람들은 국내 소비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을 찾은 여행객들이었다.
인근의 한 의류노점 상인은 "외국인들이 몰리는 상점은 몇 가지 품목에 한정된 편"이라며 "시장에서 파는 옷은 외국인들이 잘 안 산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엔 하루 평균 200~300장씩 팔았는데, 올해는 평균 100장도 못 팔고 있다"며 "이젠 저렴한 옷도 잘 안 사려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 말대로 남대문 시장에서 외국인 고객의 발길을 끄는 곳은 신발과 가방, 시계, 전통선물 코너 등으로 극히 한정된 듯했다. 이를 제외한 의류와 생필품 등의 매장엔 손님들의 발길이 뜸했다.
◇남대문 시장, 가방을 판매하는 매장에만 사람들이 몰려있고 대체로 한산하다.
남대문 시장의 안경점 골목도 한적했다. 안경점 관계자는 "안경 가격이 작년보다 오히려 더 싸졌는데도 작년보다 매출이 30%나 줄었다"며 "불경기라더니 정말로 안 좋다. 더구나 날씨까지 더운데 사람들이 시장에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무조건 5000원'을 바닥에 붙여놓은 신발가게에도 드문드문 몇몇 손님들만 있었다.
중년의 한 여성 손님은 "요즘 어디가서 5000원에 신발 한 켤레 사겠냐"며 "친구들과 눈 구경할겸 종종 시장에 들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고민하더니 "사이즈가 정확하게 맞지 않아 불편할 것 같다"며 신발을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그 뒤로 한숨을 크게 내쉬는 상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엔 한가득 땀방울이 고여 있었지만 앞에 놓인 돈 바구니엔 달랑 5천원짜리 지폐 몇 장만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