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고재인·조필현기자] # 3년 전 2000여만원을 들여 서울 창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 떡볶이 가게 문을 연 최 모씨(58세). 그는 2010년까지만 해도 건실한 중소기업에 근무했다. 기업에서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최근 2년간 가게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난 기업형 프랜차이즈 분식집 때문에 생계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최씨는 “대기업의 자본을 바탕으로 밀려들어오는 경쟁점포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요즘 전씨는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고금리 가계대출에 내몰리는 50대 이상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주로 은퇴자인 이들은 생존을 위해 자영업자로 변신하지만 절반 이상은 3년 내에 폐업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경기 침체와 고금리 가계대출의 악순환 속에서 이들은 가계부채 문제의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령층 자영업자 대출이 해를 거듭할 수록 증가하는 것은 상당수가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자영업자는 746만3000명에서 684만7000명으로 감소했지만 50대 이상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345만7000명(46.3%)에서 365만5000명(53.4%)으로 되레 늘었다.
특히 50대는 지난해 전체 자영업자 중 30.0%를 차지하며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40대는 28.5%를 차지했다.
여기에 기업에서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한 경우까지 합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은 중산층이 탈출구로 삼았던 자영업에서도 실패하면서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개인회생이란 빚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개인이 법원이 마련한 계획에 따라 부채를 청산하는 절차를 말한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올들어 6월까지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1만80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개인회생 신청은 금융위기가 처음 시작된 2008년 5763건이었다가 2009년 8699건, 2010년 8908건, 2011년 1만3806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연매출 2천만원 미만 자영업자 수두룩..‘3곳중 1곳 1년 내 폐업’
이발소, 미장원, 세탁소, 목욕탕, 여관(모텔) 등 ‘골목 상권’을 형성하는 자영업자들 가운데 상당 수가 연간 매출이 2000만원이 채 안된다.
임대료와 세금, 종업원 월급, 운영비 등을 감안하면 파산 일보 직전에 처한 업체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자영업 몰락’ 가능성마저 더욱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공중위생수준제고를 위한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방안연구'자료에 따르면 서울 등 10개 도시의 1760개 숙박·목욕·이용·미용·피부미용·세탁업소를 면접조사한 결과 이용업의 88.7%, 세탁업의 62.3%가 연매출이 200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연매출이 4000만원을 넘는 업소는 거의 없었다.
종사자 5인 미만인 우리나라 영세 자영업체 3곳 중 1곳은 1년도 채 못 돼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다. 3년 간 생존할 확률은 30~40%에 그친다. 연간 평균 영업이익은 3000만원에 불과하다.
업종에 따라 생존 기간 차이는 있지만, 여관 등 숙박업의 생명은 평균 5.2년으로 가장 길었고, 분식집과 컴퓨터게임방은 평균 2년 8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영세사업자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평균 76만6000개의 영세사업체가 새로 진입했고 75만2000개가 퇴출됐다. 전체 사업체 수의 4분의1에 가까운 사업체가 매년 새로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셈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자영업자들의 대부분 실패 원인은 과도한 부채와 월세 부담, 그리고 과당경쟁”이라며 “자기 점포 없이 빚을 많이 지고 창업을 한 음식숙박업 등 소비에 민감한 업종의 사장들이 신용불량자의 꼬리표를 달 확률이 높다. 보다 더 철저한 준비로 차별화된 포인트를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사적 재취업이 절대빈곤층 전락 방지
그러나 상당수가 은퇴 후 자영업을 선택하지만 최근에는 경기침체 심화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특별한 준비없이 자영업에 뛰어들게 되면서 경쟁률도 높아졌다. 고민 끝에 마지막 수단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자영업이 되다보니 실패 확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상운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팀장은 “50대 이상 자영업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볼 수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최대한 사전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재취업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센터 소장은 “55세 은퇴 이후 그냥 사회에 나가게 되면 생계형 자영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경기가 좋으면 웬만큼 버틸 수 있겠지만 지금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바로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장 소장은 “최대한 필사적으로 재취업을 노려보는 것이 절대빈곤층 전락을 막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노인일자리 창출과 질적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55세 이상 은퇴자, 보건복지부는 65세 이상 학력수준이 낮고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센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50세 이상 취약계층에게 취업알선 및 취업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고령 인재은행도 YWCA 등 45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을 퇴직한 중견전문인력을 위해 채용포탈사이트 커리어잡(www.career.or.kr)을 통해 중견전문인력을 중소기업 등에 매칭해주고 있다.
사회공헌을 원하는 퇴직자를 위해서는 45세 이상 퇴직한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지식과 경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사회공헌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1일 최대 2만4000원을 교통비 및 참여수당 등으로 지급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위탁중인 50+새일터 적응지원 사업도 눈여겨 볼만하다.
50세 이상 구직자에게 현장 연수 기회를 제공해 취업에 대한 자신감 회복과 기업에 대한 적응력을 향상시켜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잇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참여자에게는 현장연수 참여수당으로 1개월에 최대 40만원을 지급한다.
또한 퇴직 전후의 전직지원서비스 제공, ‘중장년층 새일찾기 프로젝트’ 등을 통해 원활한 직장 이동 및 신속한 재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건강한 노인이 많아져 점진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 확대를 꾀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노인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이 도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는 창업..전문성 확보와 창업교육은 필수
재취업 노력에도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해야 한다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몇 가지만 주의하면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우선 퇴직 후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안정적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자영업 성공률은 20%도 안 된다. 일부에서는 전체 10% 안팎을 제외하면 몇 년 안에 문을 닫는다고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장에 대한 충분한 자료 습득이 됐는지, 창업에 대한 노하우가 확보돼 있는 지 등에 대해 진단을 해야한다는 얘기다. 즉,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도전을 해야한다는 것.
이창현 신용회복위원회 수석심사역은 “퇴직 상태에서 뭔가를 하려다보니 마음은 급해지고 충분한 자료 습득이나 노하우가 확보되기 전에 성급하게 시작을 하게 되니까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창업에 대한 방향이 정해진 후에는 충분한 자금력, 창업 마인드,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아이템을 선택해야 하며 일정기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자금력도 필요하다. 더욱이 직원일 때와는 다른 경영자 입장에서 새로운 기회로 시장을 개척한다는 마인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김우종 서울신용보증재단 자영업 전문경영 컨설턴트는 “성장가능성이 있는 분야에서 하는 기회형 창업과 어쩔 수 없이 외식업 등에 뛰어드는 생계형 창업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대다수가 생계형 창업이어서 국가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문성도 노하우도 없이 창업을 해야 한다면 최소한 정부나 지자체 민관기관에서 하고 있는 창업교육은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우종 컨설턴트는 “교육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성공률이 2배 이상 차이가 났다”며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길지 않더라도 반드시 받아야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