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시대)고령화는 '초고속'..연금시장 발전 속도는 '거북이'

[기획특집]100세시대 우리는 준비됐나
퇴직연금제도 시행 불과 7년..사적연금은 이제 '걸음마'
고령자 10명중 3명만 공적연금으로 노후 생활 가능

입력 : 2012-08-13 오후 2:00:00
 
[뉴스토마토 고재인·차현정기자] 우리나라 고령화는 초고속으로 달리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금시장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뒤쳐진 실정이다.
 
세계적으로 연금시장 규모는 급격히 확대되고 있으며, 투자성향과 수익률이 높은 사적연금가입도 늘어나는 등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금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퇴직연금제도는 불과 2005년에 시행하기 시작했다. 규모도 선진국 앞에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현실이다.
 
고령화 사회 진입 속도는 빠르지만 연금시장은 시작단계인 만큼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대책마련도 뒤따라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10명중 3명만 공적연금 혜택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지난해 11.3%를 기록하면서 유엔(UN)이 규정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 속도도 초고속이다. 2026년에는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 기준인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고령화 속도의 두배 이상 빠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만큼 연금시장은 준비되지 않은 것은 현실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10명중 3명에 불과하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공적연금 수급자는 180만179명이었다. 65세 이상 인구 전체의 31.8%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 중 국민연금은 28.3%로 더욱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으며 공무원연금 3.0%, 사학연금 0.4%를 차지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저출산과 고령화 영향으로, 국민연금의 경우 2041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2053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노인들 은퇴 후 삶의 암울한 현주소다.
 
◇사적연금시장도 이제 '걸음마' 수준
 
세계적으로도 고령화를 해결하기엔 공적연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적연금의 시장을 대안으로 내놓고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하면 사적연금 시장은 아직 미미한 초창기 수준이다.
  
지난달 26일에 근로자퇴직연금보장법(근퇴법)이 개정되면서 겨우 사적연금 시장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게 됐지만 상당히 뒤늦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적연금시장은 올해 5월말 245조원 규모다. 퇴직연금 52조원, 세제적격연금으로 불리는 연금저축 72조원, 소득공제 혜택이 없는 세제비적격 개인연금 121조원 등으로 구성됐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타워스왓슨에 따르면 미국은 사적연금 시장이 2011년말 기준 16조800억달러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 3조3000억원, 영국 2조3000억달러, 호주 1조3000억달러, 네덜란드 1조400억달러의 규모로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 사적연금시장은 2000억달러 규모로 주요 선진국 대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진섭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연구소 과장은 “고령화 시대에 들어섰지만 선진국 대비 연금제도의 도입 등이 상대적으로 늦어 연금시장의 발전도 늦다”고 지적했다.
 
 
 
◇연금선진국, 사적연금시장 육성이 '대세'
 
특히 사적연금시장의 규모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네덜란드나 미국, 스위스,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연금선진국(P7)의 시장육성 정책과 비교하면 갈 길은 더 멀어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글로벌컨설팅업체 타워스왓슨 조사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P7국가의 사적연금 자산규모 비중은 65%로 공적연금(35%) 대비 두 배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공적연금 비중과 사적연금 비중이 각각 63%, 37%인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정부 역할이 지나치게 높으면 공적연금에 대한 의존율이 높아져 정부의 재정부담이 높아지고 공적연금 혜택이 감소하면 결국 노인빈곤문제 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사적연금 활성화에 발 빠르게 나선 것도 정부 재정위주의 공적연금 제도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적연금인 자발적 개인연금(IRA)과 퇴직연금을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세제혜택 한도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방식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종전 연 4만달러인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대한 세제지원 한도를 지난해 4만9000달러로 확대했다. 근로자들이 선택적으로 추가 납입할 수 있는 금액 또한 1만1000달러에서 1만6500달러로 높였다. 만 50세 이상이라면 5500달러 추가 불입이 가능하다.
 
영국 은퇴시장은 대부분이 민간 연금보험이다. 지난 2007년 신규 보험료는 110억파운드. 전 세계 즉시연금 시장의 40%를 차지했을 정도다. 특히 기대수명이 짧은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깎아주는 게 특징이다.
 
공적연금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재정 부담을 안고 있는 일본에서는 최근 공적연금의 재정지출 부담으로 개인연금을 통한 노후준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일본의 장기적인 금리인하추세는 개인연금보험시장의 침체를 주도했는데 2000년대 들어 도입한 방카슈랑스 제도에 힘입어 다시 회복세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은 “노후로 갈수록 보수적인 자산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인생 후반부를 염두에 둔 자산관리로 돌아서려면 액티브한 투자는 중단하고 연금비율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추가 인센티브·저축률 제고 등 유인책 필요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연금 시장은 주요 선진국 대비 시작이 늦은 만큼 정부의 지원과 규제완화, 기업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퇴직연금 관련 가계 및 기업의 자발적 추가적립을 유도할 수 있는 세제혜택 강화, 영세사업장에 대한 강제화 등의 추가 인센티브 부여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병덕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시장이 퇴직금 제도 이상의 실질적 노후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퇴직금의 연금전환 이외에 자발적인 추가적립이 이뤄져야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늦어 연금자산운용의 제한이 있다는 점과 근로자의 안정적인 수급권 보호 관련 규제도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밖에도 연금시장 규모 확대를 위해 소비자들의 저축률도 높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실장은 “현재 경제상황 악화로 민간저축률이 낮아 걸림돌이 될 것 같기도 하다”며 “세제 인센티브가 유인책이 될 것 같다. 이런 제도가 마련이 된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도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를 위해 자산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해주고 소비자보호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산운용 자율성 제고하고 불완전 판매를 근절해 소비자 보호 차원의 퇴직연금 모집인 제도 도입 등 연금시장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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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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