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기업 덩치에 근거한 역차별"..재계, 불만 노골화

입력 : 2012-08-20 오후 4:02:17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19대 국회가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쏟아내며 재벌개혁에 칼을 빼든 가운데 재계가 거듭 반박자료를 내며 입법 차단에 나섰다.
 
재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하도급거래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상법 등 일부 법률 개정안이 "기업의 규모에 근거한 규제"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경제 관련 시민단체들은 "재계가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 뜻과 산업경제 전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기업의 이익 추구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경제단체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일 '대기업 규제 현황' 자료를 통해 대기업은 자산, 종업원 수, 매출액, 점포 크기 등을 근거로 34개 법령에서 84개의 규제가 있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규제를 받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전경련은 대기업 규제가 가장 많은 법률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18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8건), 상법(7건) 등을 지적했다.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을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일반현황과 지배구조현황 등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명시했다.
 
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주식소유현황 등의 신고를 의무화하는 한편 일반현황과 지배구조현황 등에 관한 정보 등을 공개토록 했는데, 전경련은 이를 기업활동의 걸림돌로 인식했다.
 
하도급법은 60일 이내 하도급대급 지급을 의무화하고, 15일 이내 준공금 등의 금액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했다.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수급사업자의 하도급대금 조정 신청시 10일 이내의 협의를 개시하도록 하고, 설계변경 등의 이유로 발주자로부터 추가금액 수령시 30일 이내 수급사업자에 대한 조정을 강제하는 등의 내용 등에 대해서도 전경련은 규모에 근거한 규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자료=전경련
 
아울러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에 적용하는 집중투표제(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보유한 자의 이사 선임), 최대주주 등 이해관계자와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 때 이사회의 승인을 요하는 것 역시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는 규제로 규정했다.
 
뿐만 아니다. 최근 1년간 제정·개선된 법률들도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라고 주장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청장에게 대기업 사업조정을 신청토록 한 상생협력 촉진법이나 대형마트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사의 직업점포 등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명령, 중소기업청장 지정·고시 물품의 제조와 구매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한 국가계약법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전경련은 "세계경제포럼(WEF),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 항목 가운데 '정부규제 부담'과 '기업 관련 법규' 순위가 전체 조사대상국 중 하위권(순위가 낮을수록 기업 경영환경 악화)에 머무는 것은 대기업 관련 규제가 신설·강화 되는 것과 관련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WEF의 '정부규제 부담' 순위는 조사대상 142개국 중 98위(2009년)→108위(2010년)→117위(2011년)로 3년 연속 하락하고 있으며, IMD의 '기업관련 법규' 순위는 올해 42위로 2010년 48위에 비해 6계단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조사대상 59개국 중 하위권에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 후반 대기업 규제가 집중적으로 신설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전경련은 "일부에서는 MB정부를 친대기업적이라고 주장하지만, 27개의 대기업 규제가 신설 또는 강화됐으며, 법률이 아닌 행정지도 등 다양한 형태의 대기업 규제 역시 많은 상황"이라며 "대기업에 대한 차별규제까지 포함할 경우 대기업관련 규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려는 분위기인데, 유럽발 금융위기 등으로 한국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대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늘리려면 대기업 규제를 글로벌스탠다드에 맞게 완화·개선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제 관련 시민단체들은 "전경련의 불만은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뜻을 외면한 처사"라며 "의미없는 문제 제기"라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대기업의 독과점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공정거래법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은 재벌기업과 그 계열사가 경제력을 독식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최소한의 규제가 없으면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전경련이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기업 규제가 투자를 저해하는 것에 대한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며 정면 반박했다.
 
금융감독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36개 대기업 그룹에 속한 근로자 수는 지난 2007년말에서 2010년까지 16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정부는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폭 규제를 완화했다.
 
이와 반대로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91만명 고용이 증가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오히려 양적 측면에서 일자리 창출 능력이 월등히 나았던 것은 우리나라가 중소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구조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대기업 규제를 완화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추구해온 재벌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을 오히려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측도 재계가 대기업의 이익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이 논의되는 궁극적인 이유는 시민들이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경제민주화를 통해 이를 바로잡기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재계는 국민이나 산업경제 전만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은 채 대기업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최근 들어 경제민주화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재벌개혁 관련 규제들이 폐지되거나 입법 취지를 잘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도입과 금산분리법 등을 더욱 강화해 경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실련은 전경련이 지난 16일 '최근 5년간 10대그룹 신규 계열사 증가 현황 분석' 자료를 통해 10대그룹에 편입된 신규 계열사 396개 중 335개(84.6%)가 모회사의 주력사업과 수직계열화 관계된 회사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자료를 이번 주중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재벌의 문어발 사업 확장에 대한 재계와 시민단체 간 논란이 한층 더 가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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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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