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금기된 욕망을 범한 당신..후회? 합리화?

연극 <꿈>..춘원 이광수의 삶 통해 인간의 욕망 조망

입력 : 2012-09-02 오후 2:55:58
[뉴스토마토 김희주 인턴기자] 인간은 욕망과 금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본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 하고 싶은 법이라 욕망은 자주 금기를 눌러 이긴다. 인간의 의지가 그 만큼 약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금기된 욕망의 실현, 즉 금기를 깬 인간에게는 불안과 번뇌라는 예고된 수순이 기다리고 있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는 자각을 거친 후 모종의 깨달음과 교훈을 얻게 되는 식이다. 
 
하지만 깨달음의 내용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황이 애매했노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이도 있다. 
 
연극 <꿈>은 이 같은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씻지 못할 과오를 남기고, 이에 대한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각 개인마다 결론이 다른 쉽지 않은 소재다. 극의 주인공은 바로 뛰어난 문인이지만 친일파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춘원 이광수다.
 
"조선인 이마를 바늘로 찌르면 일본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 모두가 일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해 당시 기백 있는 젊은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춘원. 그는 왜 최선을 다하다가 최악의 길로 들어섰을까. 그에게 후회 또는 불안, 번뇌, 깨달음은 없었을까.
  
 
 
 
 
 
 
 
 
 
 
 
 
 
 
 
 
 
 
 
 
연극 <꿈>에서는 춘원 이광수를 통해 한 인간이 욕망 앞에 무너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무대 위에 가감없이 투영시켰다.
 
이야기의 시작점은 일제강점기, 춘원 이광수가 삼국유사의 <조신지몽>을 소재로 집필할 당시다.
 
조신은 승려의 신분으로 태수 김흔의 딸과 사랑에 빠져 파계승이 되고, 결국 그마저도 잃고 후회하는 비참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내용을 써 내려가는 춘원 이광수는 조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한때 순결한 양심을 품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살고자 하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변절자가 돼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을 조신에게서 보게 된 것이다.
 
극은 시대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조신과 이광수의 이야기를 교차시킴으로써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고뇌와 번민이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조국을 등진 대가로 결국 춘원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껍데기는 내면의 상처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견고함을 유지한다.
 
조국을 배신한 후 그의 곁에는 여전히 '닥터 허'라 불리는 엘리트 의사 아내,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온 동료 최남선이 남아 있다.
 
후회와 번민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남편에게 부인이 던지는 위로의 말은 제법 솔깃하게 들리기도 한다. "당신은 잘못한 것 없소. 당장 죽게 생겼는데 조국이 무슨 상관인가 말이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길이 없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잘못된 일이오?"
 
작가는 극 초반 '사람의 삶을 개인의 것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역사의 일부로 볼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묵직하고도 예민한 질문에 대한 섣부른 답을 꺼내는 대신, 지옥 같은 춘원의 마음 속 풍경을 세밀하게 그리는 방법을 택했다. 무대 위에서 춘원의 길고 긴 번뇌가 지속되는 동안 관객의 마음 속도 점차 복잡다단해질 수밖에 없다.
 
극 말미는 설화 속 조신이 꿈에서 깨듯 낙산사에서 소설을 집필하던 춘원도 부인, 최남선과 함께 삶의 근거지인 서울로 떠난다. 춘원의 친일행위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극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개인의 욕망과 대의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에 남는 것은 결국 명쾌한 답이 아니라 욕망과 금기, 깨달음 사이에서 진동하는 한 인간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성장 배경과 문화 등이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획일적인 정답보다는 각자의 삶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 기회를 갖게 만든 게 극의 결말인 셈이다.
  
작 김명화, 연출 최용훈, 출연 강신일, 남명렬, 정세라, 장재호, 강학수, 서광일, 최지훈, 김수진, 안경희, 신동훈 등. 9월 16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티켓가격은 일반 3만원, 청소년(24세 미만) 2만원, 소년소녀(18세 미만)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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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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