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표 영화제, 부산 넘어 세계를 홀린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오늘 저녁 개막

입력 : 2012-10-04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아시아 최대 영화축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4일 저녁 성대한 막을 올린다. 
 
이번 영화제는 오는 13일까지 열흘간 부산 센텀시티, 해운대, 남포동 일대 7개 극장 37개 관에서 개최된다. 초청작은 75개국 304편이며, 월드 프리미어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132편이 소개된다.
 
특히 올해는 <콜드 워>와 <텔레비전> 등 다소 낯선 작가의 작품을 개폐막작으로 선정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파격인 동시에 17회를 맞는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서의 여유와 관록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먼저 개막작은 렁 록만, 써니 럭 감독의 <콜드 워>다. 신인감독의 작품이지만 홍콩영화의 차세대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개막작에 이름을 올렸다. 이 영화는 잘 짜인 범죄영화면서도 인물의 심리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 때문에 새로운 유형의 범죄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홍콩영화의 부활 가능성을 점치는 것 외에도 곽부성, 양가휘 등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할 것으로 보인다.
 
폐막작인 모스타파 파루키 감독의 <텔레비전>은 특이하게도 영화계의 변방인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영화이다. 신예인 파루키 감독은 영화를 만들던 초창기 시절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굴한 감독으로 꼽히는데 이번에 최근작이 폐막작으로 선정되면서 큰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화제는 도시 한 곳에서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 각국의 문화를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개폐막작 외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는 각종 기획전과 다큐멘터리 영화, 만나보기 쉽지 않은 이란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 아프가니스탄의 뜨거운 영화열정
 
아프가니스탄 국립 영상자료원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특별전을 마련한다. 탈레반 정권의 탄압을 피해 필름을 숨겼던 아프간 영상자료원이 부산에서 귀한 자료를 공개하는 것. <옛날 옛적 카불에서>, <광대 아크타르> 등 아프간의 역사와 신화를 알리는 작품들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문화강국 폴란드가 자랑하는 거장들의 영화를 되짚어 보는 시간도 준비된다. 안제이 바이다, 로만 폴란스키, 도로타 켄드지에르자브스카 감독 등이 오랫동안 이어온 폴란드의 영화전통을 부산영화제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밖에 루이스 부뉴엘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 멕시코의 거장 아르투로 립스테인 감독의 특별전도 마련됐다. 립스테인 감독은 이번 영화제의 플래시 포워드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 이란 밖에서 만든 이란 영화들
 
정부의 탄압을 피해 해외에서 작업하는 이란 영화인들이 만든 최근 영화들도 부산에서 공개된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아들 메이삼과 함께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만든 <정원사>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카메라에 담으며 종교와 세계, 영화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는 영화다. 때때로 갈등하고 대립하지만 결국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는다는 내용이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터키에서 만든 신작 <코뿔소의 계절>은 쿠르드족 시인 사데그 카망가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기 시인 사헬 역의 베흐루즈 보수기와 미나 역의 모니카 벨루치의 열연, 그리고 비장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신작도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연민'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 아시아 영화, 사회를 읽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관객에게 처음으로 상영하는 아시아 작품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11개국 49편의 신작들이 부산영화제에서 첫 발표를 앞두고 있어, 명실공히 아시아 제일의 국제영화제임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아시아 작품수가 많은 만큼 최근 아시아가 겪은 시대사가 고스란히 읽힌다. 중국가족이 처한 현실을 그린 에밀리 탕의 작품 <사랑의 대역>, 키르기스스탄 소녀가 겪는 냉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빈 집> 등이 던지는 메시지는 제법 묵직하다.
 
대지진 이후 일본을 그린 작품도 상당수다. 이중 이웃주부들의 방사능 공포를 사실적으로 그린 우치다 노부테루 감독의 <온화한 일상>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 재일동포 감독의 작품에서는 북한주민의 모습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양영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 <가족의 나라>는 25년만에 병을 고치러 북한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주인공 성호의 이야기를 다루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는다.
 
◇ 다양한 감동 주는 다큐영화들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서안지구의 일상화된 폭력을 담은 에마드 부르낫, 기 다비디의 <5대의 부러진 카메라>는 철조망에서 분리장벽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동안 이스라엘로부터 고통 받아온 팔레스타인들의 일상을 담는다. 본래 아이의 성장과정을 담을 목적으로 마련한 카메라는 결과적으로 극한의 상황과 아이의 성장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뜻하지 못한 놀라운 감동을 선사한다.
 
<5대의 부러진 카메라>가 목숨을 담보 삼아 만든, 진지하고 무거운 다큐라면 독특한 개인의 삶, 인간적인 매력을 되짚어보는 유쾌한 다큐영화도 있다. 
 
캄란 헤이다리의 작품 <나는 네가다르 자말, 나는 서부영화를 만든다>는 이란에서 장장 35년간 장편 서부영화를 만들어온 자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디언 모자를 만들기 위해 닭의 깃털을 얻으러 다니고 집안살림을 등한시해 부인에게 이혼을 당하기도 하지만 1인 영화제작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앙트와넷 자다온의 영화 <릴리아 쿤타파이의 6단계 법칙>에서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꿈을 좇아온 한 개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다. 호러 전문인 이 빠진 할머니 배우 릴리아 쿤타파이의 순수한 모습을 눈길로 좇다 보면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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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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