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이 연극, 참 뜨겁다. <BBK라는 이름의 떡밥>이라니, 제목부터 부담스럽다.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에는 치킨체인점 'BBK'의 팻말이 버젓이 서 있다. '나는 꼼수다'로부터 시작된 정치풍자 열풍의 끝물에 있는, '안 봐도 비디오'인 연극이라는 오해도 살 법하다. 그런데 그냥 넘겨짚자니 단어 하나가 걸린다. BBK가 '떡밥'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공연팀은 떡밥을 여기저기에 널어 두었다. 이 공연은 극중극 형식을 띈다. 등장인물들은 BBK의 진실에 관한 연극을 만드는 연극인들이다. 극중 이들은 BBK사건에 대한 의혹을 'BBK치킨집 외곡동점'의 이야기로 패러디한 연극을 준비한다. 연극에는 특정 정치인들을 연상시키는 이름은 물론 실명도 마구 거론된다. 실세의 이름들, 뜨거운 사건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이 공연에 몰입하게 하는 '떡밥'이다. 저도 모르게 떡밥을 덥석덥석 문 관객은 시간이 흐를수록 내적갈등이 점차 고조됨을 느낀다.
인상적인 지점은 뜨거운 이야기를 잔뜩 쏟아내 긴장감을 높인 후 다시 이완시키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극중극 형식을 십분활용해 배우들은 수시로 BBK치킨집 이야기에서 빠져 나온다. BBK치킨체인점 실소유주인 BBK치킨 자문회사 지명박 사장과 BBK치킨집 가맹점주, 봉주르 흥신소 소장, 동네 영어학원 원장이 등장해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에 조명이 바뀌면 '이러다 문제 생기는 것 아니야?', '이거 이렇게 다 얘기해도 돼?', '이성적으로 비판하는 공연이었으면 좋겠어', '품격있게 가자', '실명을 거론하지 말자', '실명을 거론해야 해' 등 배우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갈등은 미처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극한으로 치닫는다. BBK공연에서 잠시 빠져나와 토론을 하던 중 지명박 사장 역할을 맡은 배우 한 명이 '아니, 이 공연에 출연료가 없어요?'라고 묻는 대목이다. '이번 공연은 사회적 발언을 하기 위해 하는 거다, 네가 늦게 섭외되는 바람에 미리 취지 설명을 못했다, 미안하다'는 연출과 배우들의 말에 이 배우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이윽고 무대는 처음으로 암전된다.
공연의 의도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공연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배우의 말에 남은 배우들은 힘이 빠진다. 배우는 결국 '뮤지컬 육영수'의 오디션을 보러가고, 그 와중에 공연 연습은 계속되며, 무대 뒤 스크린에는 BBK에 대해 언급한 이명박 대통령의 광운대학교 강연 동영상,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기사 등이 흘러간다.
결국 공연팀이 BBK라는 이름의 '떡밥'으로 낚으려 했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천착해 시시비비 가릴 일 앞에서 눈 감는 우리의 양심이다. 연극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이들의 진지한 고민은 '연극은 왜 항상 늦게 발언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시키며 자본논리에 휘말려 버린 매체 풍토에 대해서까지 반성하게 한다.
제작 극사발 프로젝트, 구성·연출 양동탁, 출연 양동탁, 미경, 허정도, 박우식, 이정선, 류성철, 29일까지 CY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