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해외공략 강화해야" vs. "현장 모르는 소리"

中企 체질 개선책 두고 학계-현장 '이견'
전경련 '건강한 기업생태계 조성' 포럼

입력 : 2012-10-31 오후 2:30:00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원가경쟁력'에서 '연구개발력'으로 근본적 체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내수시장'에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는 31일 서울 강남 앰버서더 호텔에서 상생협력연구회, 한국중소기업학회, 한국경영학회(동반성장포럼)와 공동으로 '차기 정부의 대·중소기업 협력정책,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제3회 건강한 기업 생태계 조성' 포럼을 열었다.
 
이종욱 서울여대 교수가 '한국형 동반성장의 넥스트(차기) 패러다임은?'이란 주제로 제1발표를,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가 '한국의 중소기업 생태계, 이대로 괜찮은가?'란 주제로 제2발표를 맡았다. 이어 곽수근 교수 주재로 정영태 동반성장위 본부장, 박영렬 연세대 교수,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패널로 참여하는 종합토론을 벌였다.
 
◇"원가경쟁력에서 연구개발력으로"
 
김기찬 교수는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무역 2조달러 시대에 조기 진입하려면 제조강국에서 기술강국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중소기업도 글로벌 경쟁 패러다임에 맞게 기술력을 갖춘 수출형 혁신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상당수가 아직도 80·90년대 싼 가격으로 범용제품을 만들어 팔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중국과 베트남 등 원가경쟁력이 높은 신흥국의 부상 이후에는 이들 국가에 밀려 범용제품 시장을 빼앗기고, 새로운 성장 동력도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낮은 인건비를 찾아 중국 청도에 진출한 5000여개 한국 중소기업들 가운데 R&D 기술력을 갖춘 500여개를 제외한 4500개 정도는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실제 최근 3년간 청도 현지의 인건비가 55% 가까이 오르자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고 예시한 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을 싸게 파는 종전 방식으로는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차기 정부는 금융지원 등을 통해 한계기업을 정상화시키는 80년대 방식인 요소투입형 정책보다는 유망 중소기업의 R&D 개발을 촉진해 혁신형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해당 중소기업이 수출을 확대하고, 이는 자체 수익성을 높여 기술 개발을 위한 재투자로 연결되고, 결국 기업과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되는 '선순환적 기업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근거로 3400개 국내 중소기업의 경영지표를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R&D 투자가 활발한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특허등록수가 3배 많은데다, 특허등록이 많은 기업이 적은 기업보다 수출 비중이 1.5배 높았다. 또 수출기업이 내수기업보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이 1.5배 가까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의 파이를 키워야"..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
 
이종욱 서울여대 교수는 "대·중소기업 간 납품단가 문제는 현재 성과를 두고 갈등하는 네거티브 방식보다는 미래의 파이를 키우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우리경제의 지속성장에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성장'을 '분배'에 앞세우는 기존 파이 논쟁의 반복이다.
 
이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대부분 지배적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제품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는 상황이므로 대·중소기업이 납품단가를 놓고 갈등하면 둘 중 하나는 피해를 보는 제로섬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서로가 공동 연구개발 등을 통해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으면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대기업은 브랜드 가치를 높여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인상분을 시장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데 주력하고, 중소기업은 원가절감과 품질 등을 높여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의 파트너로서 적합한 역량을 갖추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정부는 대·중소기업 간 거래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이들을 후방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정책적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간 자율성을 강조한 것으로 재계 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대목이다. 다만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횡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정부의 개입과 조정력을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또 "동반성장 추진 성과를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기 보다는 기업이 처한 산업별, 역량별 특성을 고려해 적합한 모델을 찾도록 (기업들의) 자율성을 존중해 줘야 한다"며 특히 "대기업에 모든 것을 기대하기보다 정부와 국회, 노사, 국민 등 경제주체가 함께 포지티브형 동반성장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 모르는 소리. 몰라서 안 하나"
 
한편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현장은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지적과 조언이 원론적 수준에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중소기업들이 처한 현장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란 얘기다.
 
대형 제조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1차에서 2·3차 벤더로 내려갈수록 납품단가 인하의 압력은 커진다"며 "자연 생태계를 방불케 하는 먹이사슬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는 "상생은 바라지도 않는다. 공정만이라도 지켜지는 시장이었으면 한다"며 "차기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적절한 규제와 조정력을 보였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연구개발과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느냐.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느냐"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계속해서 원가경쟁력만을 강조하며 압박하는데 이를 맞추다 보면 연구개발에 투입할 여력은 전혀 없게 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공급의 다변화를 위해 한때 수출을 꾀하기도 했지만 곧 접었다는 토로도 뒤따랐다.
 
한 민간 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전무한 게 현실"이라며 "정부는 중소기업이 기술개발과 수출시장 개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대기업은 착취에서 공존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말 뿐인 대책은 중소업계를 더욱 나락으로 빠지게 할 뿐이란 자조 섞인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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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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