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다사다난(多事多難). 올해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총수들에게 더 없이 어울리는 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횡령·배임 등 기업형비리로 검찰에 소환됐는가 하면 기소된 뒤에는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충격을 줬다. 민사나 행정사건도 끊이질 않았다. 특히 삼성이나 태광 등 대기업 형제들의 상속재산을 가운데 둔 법정분쟁도 종전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여기에 삼성과 애플 LG 등의 특허소송은 점차 규모가 커지고 국제화 되고 있다. 파란만장했던 2012년 주요 기업들의 송사(訟事)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올 한해는 우리사회의 변화를 둘러싼 행정분쟁도 끊이질 않았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으킨 대형마트 '의무휴업' 취소소송은 지난 1년간 행정법원과 지방자지단체, 국정감사장을 뜨겁게 달궜으며,
KT(030200)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2세대(2G) 이동통신(PCS) 서비스를 중단하고 본격적인 4G(LTE) 서비스 시대를 맞았다.
31일 법원에 따르면 '2G 서비스 폐지' 관련 일부 소송은 내년 상반기 대법원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또 10여개의 '대형마트 의무휴업' 소송이 계류 중인 서울고법은 지난 10월 '지자체장의 판단 재량을 박탈한 조례는 위법하다'며 원심 취지대로 판결했다.
◇ 4G시대 개막..법원 "소비자 피해 우려"
법원은 KT가 2세대 이동통신서비스 사업을 종료한 것은 정당하다고 봤다.
2G 가입자들은 "남아있는 2G 이용자가 1% 미만인데다 손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고객들이 멀쩡히 사용하던 것을 중단할 수는 없다"면서 "이 사건 처분에 앞서 공청회를 개최하거나 PCS 이용자들에게 의견 제출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KT의 2G 서비스 폐지가 되지 않을 경우 4G 서비스 시장에서 다른 이용자가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4G 시장의 경쟁구조가 악화되면 소비자들이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이 하락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현재로선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2G 이용자들이 본안소송에 앞서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됨에따라 KT는 이미 2G 서비스를 종료하고 4G 서비스를 본격화한 상태다.
앞서 KT는 지난해 3월 2G 서비스 종료 방침을 정한 뒤 폐지승인 신청했고, 방통위는 12월 8일부터 2G망 철거를 할 수 있도록 이를 승인했다. 이에 2G 가입자 900여 명은 "KT가 가입자를 줄이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는데도 폐지를 승인한 것은 위법을 묵인한 것"이라며 폐지승인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2G 가입자들이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지난 2월 "2G 가입자들이 서비스 폐지로 입는 손해는 금전으로 보상이 가능하다"며 방통위의 손을 들어줬다. 본안소송에서도 1·2심 재판부는 원고패소 판결했으며, 일부 소송이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약가인하 처분 부당' 소송 제약업계 주목
제약사가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징벌적 약가인하 처분을 한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소송도 제약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항소심 소송이 종결되지 않은 제약사는 4곳이다.
재판부는 '리베이트 약값 인하' 연동제도의 전제가 되는 복지부 조사결과는 리베이트 비율의 표본성을 갖추지 못해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봤다.
종근당과는 엇갈린 판결이 나온데 대해 법원 관계자는 "종근당의 리베이트 조사대상이 500여곳인데 비해 동아제약 등은 1건에 불과하는 등 표본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양기관의 공보의가 적극적으로 리베이트를 요구한 점도 고려됐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09년부터 리베이트 적발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최대 20%까지 인하하는 '리베이트-약가인하' 연동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7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불법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확인된 종근당과 동아제약 등 6개 제약사에 대해 '리베이트 연동 약가인하' 규정을 처음으로 적용해, 일부 품목의 약가 상한선을 0.65~20%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에 불복한 제약사는 "리베이트와 연동한 약가인하 처분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 대형마트 '의무휴업' 논란 계속돼.."조례 개정"
대형마트와 지방자지단체가 의무휴업을 놓고 소송을 진행 중인 가운데 항소심도 잇따라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지자체가 시·군구청장의 재량권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 행정절차법을 지키면 의무휴업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행법상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일 지정은 지자체장에게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어 지방의회의 조례로 이를 침해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강동구 등은 대형마트에 대해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의무적으로 문을 닫고, 지자체가 매달 2일씩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공포했다.
이에 롯데쇼핑 등 대형마트는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은 물론 소비자의 선택권마저 침해한 것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조례는 지자체장의 판단 재량을 박탈해 위법하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대형마트 소송을 심리한 일부 항소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이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법의 취지와 내용에 맞게 개정한다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제한 규정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달라질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한편, 지난 10월 코스트코가 "영업시간 제한 처분을 철회해 달라"며 뒤늦게 지자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증여세·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소송도 잇따라
재벌가 2·3세의 증여세·기업 과징금 부과 취소 소송도 잇따랐다.
'300억원대의 증여세 부과가 잘못됐다'며 소송을 낸 하이트진로 그룹이 그 예다.
지난 8월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하이트 진로그룹 박문덕 회장의 장남 태영씨와 차남 재홍씨가 반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회사가 납부한 법인세는 이 사건 주식을 평가한 액수 전체에 대해서 이뤄졌고, 증여세는 회사의 주식이 증가한 만큼 반사적으로 상승한 회사 주식의 가치증가분과, 하이스코트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금액에 대해 이뤄졌다"며 "소득 귀속자, 부과대상 등이 모두 달라 중복과세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와 김찬식 벽산건설 부사장도 용산세무서장과 반포세무서장을 상대로 같은 취지의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한편, KT는 950억원대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결국 졌다.
앞서 KT와 하나로텔레콤은 지난 2003년 시내 전화요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KT가 기존 요금을 유지하는 대신 하나로텔레콤은 요금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KT가 하나로텔레콤에 2007년까지 매년 시장점유율을 일정 부분 넘겨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KT는 공정위가 이를 부당공동행위로 보고 2005년 1130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취소 소송을 냈고 법원은 과징금을 재산정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공정위가 2009년 다시 과징금을 산정해 180억원 가량을 줄인 950억원을 재차 부과하자 KT는 또 소송을 냈다.
지난 9월엔 IPTV에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담합했다는 이유로 현대HCN 등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들에게 내려진 과징금 처분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MSO의 행위로 시청점유율 상위 40개 방송채널 중 상당수가 IPTV사업자에 대한 방송프로그램 공급을 포기하는 등 PP사업자의 사업이 방해됐다"면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상태를 초래한만큼 과징금 부과는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동통신사의 휴대폰 요금 원가자료 일부를 공개하라는 판결은 관련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베일에 가려졌던 전화요금의 원가정보가 공개될 가능성이 열린 탓이다.
지난 9월 서울행정법원은 참여연대가 '휴대전화 요금 원가 정보를 공개하라'며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이동통신요금 원가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다만, 참여연대가 청구한 자료가 적용되는 시기는 지난해 기준 최근 5년간으로 2·3세대 통신 서비스에 해당되며, 4세대 LTE 서비스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