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사진)의 금융경제 분야 공약은 크게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박 당선자는 가계부채 문제 해법으로 '국민행복기금' 조성을, 하우스푸어 방안으로는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두 방안 모두 실현 가능성이 낮거나 자칫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결책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단계별 중장기 방안 및 종합계획 수립과 '통합도산법' 개정 등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민행복기금, 캠코 손실나면 세금 투입 불가피"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약 320만명의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금의 재원은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고유계정과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등으로 1조8000억원을 마련, 이를 바탕으로 10배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마련된 18조원으로 금융회사나 채권추심업체 등이 보유한 가계의 연체채권을 매입해 대출 원금을 절반(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70%)으로 깎아주고 나머지는 장기간 나눠 갚도록 채무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1인당 1000만원 내에서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게 하는 데도 사용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채무자들이 빚 갚기를 포기하고 정부에 빚 탕감을 떠맡겨 버리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거나, 혜택을 볼 수 있는 지원 대상과 일반 국민간의 형평성 문제가 더 큰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보다 더 우려스러운 상황은 '세금 투입'이다. 캠코 기금은 사실상 '세금'으로, 기금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더 많은 세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선거 전 박근혜 후보 캠프는 공약 마련 당시 연체채권을 매입해서 원금을 일부 탕감해줘도 기금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자신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후보 캠프는 과거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처리를 위해서 사용됐던 캠코의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영 방식을 활용한다면 연체채권을 매입해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연체채권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사들여 이후 시장가격으로 내다판다면 손실을 입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수백만명의 연체채권을 금융회사가 당시처럼 싸게 팔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연체채권 매매에 따른 손실과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 주면서 생기는 손실을 정부가 세금으로 메우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김 교수는 더불어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도 결국 유럽처럼 세금 투입이 불가피하겠지만 마스터 플랜을 가지고 적절한 시기에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교한 계획 없이는 국민행복기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우스푸어를 기업구조조정 방식으로 해결?..실효성 '글쎄'
하우스푸어 해결책으로 내놓은 '보유주택 지분매각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란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주택의 지분 일부를 공공기관에 넘기고, 그 대금으로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는 것을 말한다. 집주인은 넘긴 지분만큼 공공기관에 임대료를 내야한다.
캠코는 지분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지분 대금을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이 제도가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넘긴 지분에 대한 임대료가 기존 대출이자보다 낮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대출이자를 임대료로 바꾼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지분매각제가 담보 채무자의 현금 부담을 완화시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얼어 붙은 상황에서 캠코가 ABS로 얼만큼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에서나 가능한 방식을 일반 가계에 적용하려 한다"며 "수십만 가구에 달하는 하우스푸어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주택을 모두 사들인다는 중앙집권적 방식으로는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지분매각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숨지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국민행복기금은 지원 대상과 지원 방법 등 세부적인 사안을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지분매각제는 (실현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고백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역시 가계부채를 포함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재정 투입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출입기자단 송년 다과회에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채무자와 채권자의 문제로 파악되야 한다"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별제권(파산 재단에 속하는 특정 재산에 대해 우선권이 있는 채권자가 다른 채권자와 관계없이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의 법적검토, 다중채무자 관련 사안, 은행들의 공동 보조와 관련된 부분 등에 대해 정부가 무조건 나서서 개인 채무자를 위한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당선자 공약 '위헌' 요소..'통합도산법' 개정해 파산·회생 활성화해야
박근혜 당선자의 이같은 공약이 '위헌' 요소를 띄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박 당선자의 공약은 가계부채 해결의 3대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무자와 채권자간 공평한 손실부담 ▲신용대출 채무자와 담보대출 채무자간 형평 유지 ▲국가 재정지원의 최소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국민행복기금의 경우 누군가의 채무를 탕감해 주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채권 금융기관이 돈을 받지 않아 손해를 보면 업무상 배임이 되고 다른 사람(캠코)이 대신 내주면 공평한 손실부담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의 판결을 제외하고는 입법부나 행정부는 채권자에게 돈을 받지 말라거나 채무자에게 일부만 갚으라고 결정할 수 없다"며 "정부가 나서서 채무자의 빚을 일정부분 탕감해준다고 하는 것은 채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위헌적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책으로 통합도산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채무자 프렌들리' 방식으로 통합도산법을 개정해 법원에서 개인 파산 및 회생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개인파산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채무자에게 종잣돈(seed money)을 제공해 채무자가 패자부활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장기적인 대책으로 도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선 단기 선행 과제는 물론 중장기 대책이 함께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