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공헌의 진실)'무조건 내놔라'식 요구가 '방향성' 상실케 했다

(특별기획)③정부·사회·국민의 무한대 요구..기업 경영 위축
세제 혜택·의식 개선 등 시급..기업별 특화된 활동도 필요

입력 : 2013-02-12 오전 10:00:00
[뉴스토마토 정수남·이보라기자]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천편일률적이거나 홍보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과 동시에 한편에서는 정부·사회·국민들이 마치 '맡겨 놓은 빚 내놔라'는 식의 사회공헌 활동 요구도 개선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권 교체 시기 새 정부의 보이지 않은 압박에 의한 사회공헌 활동 공표,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국민들 사이에 만연돼 있는 '기업은 우리 돈으로 매출을 올렸으니 당연히 내 놔야지'란 맹목적 의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 입장에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라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내 놓는 돈이 아니라, 정부·사회·국민·기업이 모두 발전하고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공헌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들은 지난 60∼80년대 정부의 경제정책을 등에 업고 공룡기업으로 성장했으나, 사회 공헌활동에는 미진했다.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 삼성화재, SK에너지, 국세청 빌딩 등이 보인다.
 
◇정부·사회·국민 맹목적 기대..'마지못한 사회공헌' 시발점
 
실제로 외국에는 록펠러재단,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 기업을 경영하면서 벌어들인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민간재단이 많다.
 
여기에 기업 경영은 아니어도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도 자신의 유산을 기금으로 해 노벨상을 제정,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해 수여토록 했다. 게이츠 재단을 재외하고는 모두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경영자나 자산가, 기업 등이 설립한 민간재단 가운데 절반가량이 2000년 이후에 설립됐다. 아직은 선진 외국 사례보다 성숙도에서 떨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부와 사회의 '기업은 무조건 내놔야 한다'는 식의 압박은, 기업들의 '마지 못한 사회공헌 활동'도 부추겼다.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회수 불가능한 비용으로 여기기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 간사는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50여년 이라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어 정통적인 자본주의에서 왜곡된 부분이 많다"면서 "최근 사회 구성원이 기업에 대한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면서 기업이나 기업가는 자발적이기 보다는 마지못해 민간재단을 설립하는 등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위원회 장면.
 
◇정부, 반강제적 압박..中企도 "구걸과 선심의 한계 못 벗어나"
 
최근 정부가 경제민주화 측면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8.15 축사에서 '대중소기업이 상생하는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같은 해 말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위원으로 출범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민간위원회이기는 하지만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함께 대기업의 동장성장 지수를 평가하고 있어, 이를 민간 위원으로 보는 기업은 드물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희생양이었던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백번 공감하지만 강제적으로 지수를 따지고 평가한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자발적인 참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지어 중소기업계에서도 주요 기업의 사회공헌이 정부와 사회의 요구에 마지 못해 응하는 '구걸과 선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방향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공헌 활동의 기업이미지 제고 기여도.(단위 %, 자료제공 = 리서치앤리서치)
 
◇'소비자' 앞세운 단체들.."기업 희생 요구 과하다"
 
시민단체나 소비자단체 등도 기업의 사회공헌 요구에 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평가다.
 
기업과 소비자는 항상 각각 갑과 을의 입장이다. 소비자는 약자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소비'를 앞세워, 소비자 대변 단체를 구성 기업에 맞서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녹색소비자연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한국소비자단체 등 '소비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단체만 지방과 수도권에 100여 곳이 넘는다. 대한민국이 소비자 천국으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이들 단체들은 '소비'라는 무기를 앞세워 무조건 기업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공헌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기업이 자사 제품에 대한 결함으로 리콜이나 제품 교환을 실시하면 이들 단체는 막대한 위자료를 요구하는 등 기업의 무조건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정서를 대변한다.
 
최근에는 기업의 노동조합도 가세했다. 국내 주요 기업 노조는 2000년대 들어 임금협상과 단체 협약 시 사회 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자사의 사회공헌 활동을 강요하고 있다. 만일 노조는 사측이 임단협과 발전기금 가운에 하나라도 소홀히 할 경우 파업을 내세워 위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조의 진전성을 의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으면서도 매년 임금을 올려 달라는 '염치 없음'를 다소나마 기업의 사회공헌 기금으로 얼버무리려는 처사라는 것.
 
현대자동차그룹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 차원에서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을 병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 않다"면서 "기업이 사회 각계 각층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충족하기는 한계가 있다. 이들 요구로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면도 있다"고 토로했다.
 
소비자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 시민모임 한 관계자는 "기업에 무조건 요구하는 사회공헌 활동보다는 기업과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업을 유도하고 이끄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돌려 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먼저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의 사회 공헌 기금에 따른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소비자는 착한 기업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한다면, 국민-기업-정부가 상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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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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