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곽보연기자] 연임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임기 만료에 따른 사퇴의사를 밝혔다.
허 회장은 7일 서울 프라자호텔 열린 전경련 이사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나는 사표를 냈는데, 내가 되겠소"라며 "임기는 끝났는데, 나가는 사람이 후임을 정할 필요가 있나. 어떻게든 되겠죠"라면서 연임 거부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연임 여부에 대해 "(회장단에서)알아서 잘 하실 것"이라며 "회원사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7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회'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정병철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앞서 허 회장은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무연고 지적 장애인 보호시설 '천사의 집' 방문 직후에도 "좀 쉬고는 싶다"면서 "회원사들에게 물어봐라. 그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회원사들의 뜻을 따르겠다'는 발언에 대해 연임 결심을 굳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지금까지 허 회장은 수차례에 걸친 기자들의 연임 여부에 대한 질문에 "회장단의 결정에 달린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이날 허 회장의 발언에 '사표'라는 단어가 포함되면서 이전과는 뉘앙스가 달라진 것 같다는 게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역대 전경련 회장 가운데 연임 전 사의를 표명한 회장이 없었던 전례를 비춰보면 허 회장의 이날 발언은 연임에 부정적 의견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경련 측은 허 회장의 돌발 발언에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표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임기는 끝났다'는 의미기 때문에 회원의 재신임을 묻는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면서 "회장단 내에서 다른 분을 추대하려는 분위기는 없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허 회장은 지난 2011년 2월 33대 회장에 선출돼 2년간 전경련을 이끌어 왔다. 재임동안 예상치 못한 경제민주화 광풍을 몸소 겪어야 했다.
회장단이 연임을 결정할 경우, 굵직한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재계를 대변해 경제민주화 바람의 방패 역할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박근혜 당선자가 기업지배 구조 개선과 더불어 중소기업 지원을 국가적 과제로 제시함에 따라 재계에 대한 압박 수위가 훨씬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전경련 회장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허 회장이 이날 재임 거부의사를 애둘러 표명한 것도 이런 부담감을 의식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허 회장의 유임이 유력하다는 관측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허 회장이 GS그룹과 전경련을 챙겨 피로도가 극에 달하기는 했지만, 전경련 회장의 후임자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회장을 공식 추대하는 전경련 정기 총회가 2주밖에 남지 않아 후임자 선정 작업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역대 13명의 회장 가운데 개인적 사정으로 단임한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구자경 LG 명예회장,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등을 제외하고 모두 연임했다는 점에서 허 회장의 재임이 유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정병철 부회장의 연임 여부에 대해서는 전경련 내 변화를 위해 교체가 유력하다는 게 재계 안팎의 분위기다.
한편, 전경련은 오는 21일 정기총회를 열어 회장, 부회장 선임 등의 안건을 확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