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검찰가서 모두 깐다" 조사 때만 되면 '언론플레이'

근거없는 모함 결론..거짓을 거짓으로 덮으려다 스스로 만신창이

입력 : 2013-02-20 오후 8:16:25
[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20일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고발된 지 10개월, 문제의 발언이 있은지 23개월만이다.
 
징역형과 함께 법정구속이 선고되자 그는 고개를 숙였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증거자료가 있으니 검찰이 직접 찾아보라던 당당함은 없었다. 검찰 소환조사 때마다 수십명의 경찰 경호를 받으며 전관예우를 받던 위엄도 보이지 않았다. 쏟아낸 말을 주워 담기엔 너무 멀리 온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 전 청장은 경찰간부를 대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 등은 같은 해 8월 조 전 청장을 '사자(死者)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에서 차명계좌 모두 까겠다"
 
조 전 청장은 검찰 소환을 앞둔 지난해 5월3일 한 언론에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어느 은행에 누구 명의로 돼있는지 검찰에 출석해 모두 까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 말도 거짓말이었다. 당시 조 전 청장은 같은 달 9일 검찰조사에서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할 차명계좌나 은행명 등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노무현 차명계좌)발언에 대해 후회한다. 유가족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지난해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하지만 조 전 청장은 말을 또 바꿨다. 그는 1차 검찰 소환조사가 끝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부인(권양숙 여사)을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 간부 2명이 개설한 우리은행 삼청동지점 계좌 2개에서 10억여원씩 20억원 이상이 발견됐다는 정보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이 정보는 경찰 내부가 아니라 '신뢰할 만한 외부'에서 얻은 정보로 당시는 물론 지금도 이 정보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의 출처는 "대검 중수부 수사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당시 대검 고위간부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검찰 내부 사람도 아니고 누가 수사 중인 사항을 경찰에게 알려주겠느냐"며 조 전 청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2008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자료를 공개하라는 조 전 청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건 본인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라며 "검찰 조사에서 정보를 전했다는 사람을 밝히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 전 청장은 더욱 고강도로 나갔다. 그가 2차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지난해 6월5일, 세상의 이목은 '누구로부터 차명계좌 이야기를 들었는가'에 쏠렸다. 그는 검찰조사 직전 만난 취재진에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차명계좌가 있는지 없는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며 "우리은행 측 자료를 조사해보면 차명계좌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명계좌 존재를 입증할 증거는 가져왔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명색이 서울경찰청장..함부로 말했겠나"
 
조사를 마치고 나와서도 조 전 청장은 여전히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명색이 서울경찰청장이었는데 함부로 말했겠나. 믿는 사람한테 직접 들은 것"이라며 "검찰은 내가 '10만원짜리 수표 20장이 들어있는 계좌를 가지고 오해했다'며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기소하면 재판을 통해 문제의 계좌가 드러날 것"이라며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차명계좌의 유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2차 소환시에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뒤 귀가하려는 조 전 청장과 이를 막아서는 취재진, 이를 뜯어 말리는 경찰들이 뒤엉키면서 조 전 청장의 에쿠스 승용차가 취재중인 여기자의 발 위로 지나간 것이다.
 
이 여기자는 “경찰의 과잉경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조 전 청장에게 물었고 차량은 차문을 연 채로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승용차 오른쪽 뒷바퀴가 여기자의 왼쪽 발을 밟고 올라선 것이다.
 
조 전 청장은 "왜 이런 일이..."라며 나지막하게 말한 뒤 부리나케 에쿠스 승용차를 빠져나와 다른 차로 갈아타고 서둘러 청사를 빠져나갔다. 조 전 청장이 피해 여기자를 찾은 건 며칠 뒤 여기자가 입원한 병원에서였다.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 아니다"
 
검찰 조사 이후에도 그의 ‘차명계좌 주장’은 계속됐다. 한 방송사 토크쇼에 출연해 "검찰은 허위라고 했지만, 절대 허위가 아니다. 분명히 (차명계좌는) 있다"며 "나는 그런 것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은행 측에 그런 명의의 계좌가 있는지 추척하면 다 확인이 된다. (검찰이) 이 부분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전 청장이 "검찰이 기소하면.."이라고 발언한 걸 두고 이미 '자신의 기소를 전제로 한 것'이란 분석이 나돌기 시작한 후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9월17일 조 전 청장을 사자명예훼손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느긋했다. 조 전 청장이 주장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의심이 가는 계좌도 없었다. 물론 대검 중수부에서 해당 부분 수사결과자료를 받아 검토를 마쳤다.
 
◇'의리'지키고 징역행?.."3명한테 들었지만 밝힐 수는 없다"
 
전세를 역전시킬 변수는 조 전 청장이 법정에서 핵심 쟁점인 신뢰할만한 정보를 얻은 '유력인사'를 밝히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조 전 청장은 '당시 핵심수사라인에 있던 사람'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는 "중요한 것은 조 전 청장이 차명계좌가 존재한다고 믿게 한 사람"이라며 "정보를 말해줬다는 사람을 왜 밝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재판부가 거듭 재촉하자 조 전 청장은 정보를 준 사람이 3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문제의 발언을 하게 된 장본인인 그 사람을, 난 홀가분할지 몰라도 그 말을 전해준 사람과 소속단체도 말려들 수 있어 곤란하다"고 밝혔다.
 
또 "발언이 크게 문제되고 나서 두 사람이 사실을 더 확인해줬다. 한 사람은 직접, 나머지는 간접적으로 확인해줬다"며 "우호적인 마음에서 말해준 사람들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검찰 "조 전 청장 주장은 모두 '카더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는 검찰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검찰은 "조 전 청장측이 추가로 제출한 의견서는 대부분 언론기사"라며 "기사 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다. 모두 '카더라'다"고 공격했다.
 
검찰은 "조 전 청장에 대한 수사는 조 전 청장 스스로가 정보의 출처를 거부해 수사가 막힌 것으로, 결국 중수부 자료까지 확인했지만 조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증거는 없었다"며 "조 전 청장은 자신의 발언 근거를 먼저 대는 것이 순서"라고 몰아부쳤다.
 
재판부도 조 전 청장측의 소송 태도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조 전 청장측은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수사 기록이 존재함을 거듭 주장하며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중수부 기록이 없다면 그 이전의 자료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2008년3월부터 2009년5월까지의 압수수색영장 등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참에 과거기록까지 다 보면서 '봐라 내말이 맞지 않느냐'는 식은 곤란할 뿐더러 명예훼손을 다투는 소송법리상 맞지 않다"며 촉탁을 불허했다.
 
첫 공판에서도 조 전 청장은 차명계좌 존재를 끈질기게 주장했다. 그와 그의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한 행정관의 계좌 내역이 영장을 청구해 받은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행정관의 추가 계좌가 있을 것"이라고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의혹을 던지는 주장은 안된다"고 못박았다.
 
◇"유족에 유감이라더니 사과 없었다"
 
이어진 공판에서는 증인으로 나선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와 조 전 청장측의 설전이 있었다.
 
곽 변호사는 "피고인은 언론을 통해 '고소인 측과 합의하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저한테) 연락 온 적이 없다"며 '제게 한 번이라도 전화해보신 적 있나요'라며 피고인을 향해 되물었다. 또 "피고인의 말대로 우발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면, 한 번이라도 고소인 측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제가 나서서 고소를 취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전 청장 측 변호인은 "피고인의 요청으로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직전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직접 만나 (그가 봉하마을에 내려가기 전)권 여사에게 피고인의 사과의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곽 변호사는 "피고인 측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인고, 박 전 수석은 저도 잘 아는 분이지만 그런 (사과)취지의 말을 들어본 적 없다"고 답변했다.
 
재판부도 "누군가를 통하고 통해서 (권 여사께)사과의사를 표했다는건 사과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통은 그런 걸 '사과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검찰은 조 전 청장에게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당일에도 조 전 청장은 “2009년 당시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의 핵심 라인에 있던 검사와 수사관으로부터 차명계좌 내용에 대해 들었다”고 주장했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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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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