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재계 1·2위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같은 날 입사 시험을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구직자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취업 준비생들 입장에서는 한 번 더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해당 기업들은 '충성심'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라며 은근히 또 다른 테스트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과
현대차(005380)그룹은 오는 4월7일 각각 직무적성검사(SSAT)와 인적성검사(HKAT)을 치를 예정이다. 재계 1, 2위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한날 입사 시험을 치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채용 일정을 지난해와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3월5일부터 14일까지 원서를 접수받아 4월1일 인적성검사인 HKAT을 치렀다. 올해는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원서를 접수 받았고 다음달 7일 HKAT 시험을 치를 계획이다.
채용일정에 변화가 생긴 것은 삼성그룹이다. 지난해 삼성은 3월2일부터 6일간 원서접수를 진행해 같은 달 18일 SSAT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올해는 삼성이 인성시험을 직무적성시험과 분리하고 면접전형에서 집단면접을 제외하는 등 채용과정에 일부 변화를 주면서 채용일정이 20일정도 늦춰졌다.
삼성은 토익스피킹이나 오픽(OPIc)과 같은 어학점수와 학점 등 기본적인 자격 조건을 만족시키면 바로 SSAT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반면 현대차는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해야만 HKAT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기업을 선택해 원서를 넣어야할지 구직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2012 우수벤처 채용박람회'를 찾은 청년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제공하는 부스에 몰려있다.
◇취업준비생 표정 극과 극.."선택권 박탈" 혹은 "오히려 기회"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K대학교 학생 김아무개씨(26)는 "삼성과 현대차의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건 취업준비생"이라며 "안 그래도 취업문이 조금씩 좁아지고 있는데 시험 날짜를 중복시켜 수험생들의 선택권이 박탈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묻지마 지원자'를 걸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반기는 모양새다.
현대자동차만 바라보고 2년째 입사 준비를 해왔다는 장아무개씨(30)는 "삼성과 전형이 겹쳐서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며 "적어도 일단 모든 기업에 원서를 넣고보자는 식의 지원자들은 걸러낼 수 있으니 진짜 현대차에 가고 싶은 학생들만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이아무개씨(28)는 "스펙이 뛰어난 학생이 여러 기업에 최종합격 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며 "누군가는 그 학생으로 인해 취업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인데 입사시험을 같은 날로 정하면 적어도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에 동시 합격하는 학생은 없지 않겠냐"고 반기는 기색을 드러냈다.
◇기업 "회사에 대한 구직자들 '충성도' 엿볼 수 있어"
정작 구직자들를 고민에 빠트린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이번 채용일정에 일절 고의성이나 계산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신입사원 공채 입사시험은 지난해부터 인사(HR)팀에서 준비해온 것으로 공교롭게 삼성그룹과 겹쳤을 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험 날짜 역시 이전부터 체크해온 것"이라며 "삼성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물산이 지난해 진행한 '함께가는 열린채용 박람회' 현장. 박람회장을 찾은 구직자들이 현직자들과 채용상담을 나누고 있다.(출처: 삼성 블로그)
삼성그룹 역시 입사시험 날짜가 같은 날로 잡힌 것은 우연이지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라고 밝혔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올해 채용공고가 예년과 비교해 약 20일 정도 늦게 발표된 것과 관련해 "전 계열사에서 인력 수급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여기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며 "계획 자체가 늦어진 것이지 의도적으로 현대차의 채용일정과 맞추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다만 이번 채용을 통해 삼성에 취업하길 원하는 지원자를 가려낼 수 있고 비용측면에서도 효율적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지원자들이 입사시험이 같은 날인 것을 안다면 본인이 더 원하는 기업으로 방향을 정할 것"이라며 "때문에 삼성을 원하는 지원자를 가려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삼성의 직무적성검사인 SSAT는 필수조건만 충족시키면 볼 수 있기 때문에 시험장 대관료나 채점에 드는 비용 등을 절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수인재 확보 위해 일부러 시험일 중복시키기도
한편 의도적으로 입사시험 날짜를 같은 시기에 집중해서 치르는 기업들도 있다.
지난해 10월20일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금융공기업 입사 A 매치데이'로 불렸다. 한국은행과 예금보험공사, 정책금융공사, 한국거래소 등 일명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8개의 금융공기업이 일제히 입사시험을 치렀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공기업들이 입사시험 날짜를 맞춘 것과 관련해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한 공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다른 2~4개 공공기관에 잇따라 합격하면서 다른 지원자들이 탈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백대 1의 경쟁과정을 통해 뽑은 인재가 다른 회사를 선택할 경우 다른 지원자를 놓치는 등 비효율성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 사기업의 경우 사전 합의를 통해 입사 시험날이나 면접일을 겹쳐 진행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공공기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오규덕 인크루트 대표 컨설턴트는 "일반적으로 공기업이나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일부러 시험일정이나 면접날을 조율해 같은 날로 잡기도 한다"면서 "만약 한명의 우수한 인재가 여러 기업에 동시에 합격했을 경우 기업측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대표적인 사례가 은행권이나 금융기관들이 모여 채용일정을 조율하는 경우"라며 "이는 처음부터 가고 싶은 기업을 결정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번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채용일정이 겹친 것은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다"며 "동종 업계가 아니기 때문에 사전 조율 작업을 거쳤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