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블로그)'월하노인' 현오석 부총리의 성평등 감수성

입력 : 2013-05-22 오전 10:27:37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월하노인(月下老人)이란 고사성어를 들어보셨는지요?
 
문자 그대로 옮기면 달빛 아래 노인이란 의미인데요.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사람을 좀 고상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이 말은 먼 옛날 중국 당나라 시절 위고라는 청년이 길을 가다 달빛 아래의 노인으로부터 예언을 들은데서 기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노인은 위고의 아내가 될 사람으로 채소가게 여자아이를 지목했는데요, 격이 맞지 않다고 여겼는지 기분이 상한 위고가 아이를 해치려 했지만 실패하고 얼굴에 상처만 입혔다고 하네요.
 
그 뒤로 십수년이 지나 위고는 한 고을의 관리가 됐고 고을 태수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신부는 노인이 예언한 채소가게 그 아이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신부의 얼굴은 대단히 아름다웠지만 어린시절 입은 상처가 얼굴에 고스란히 남았거든요.
 
위고는 잘못을 뉘우쳤고 부부는 백년해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두가 길어졌습니다만, 최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꺼낸 이야기를 상기하니 문득 월하노인이 떠올랐습니다.
 
부총리가 지난 20일 예고 없이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담소하다 '청사 매칭 이벤트'를 꺼냈습니다.
 
뜬금 없이 매칭 이벤트라니요? 부총리 설명은 이렇습니다.
 
취임뒤 실국별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성사무관들이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하소연을 많이 한다고 하네요.
 
부총리 말로는 "아주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총각처녀 모여라 해서 청사에서 매칭 이벤트를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경제 나빠지는데 한가하다는 소리나오면 안되니까 언론반응이 어떨까 파악해 보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현 부총리는 "기재부 처녀를 다른 부처 총각에 연결시켜주는 것도 좋은데 서로 정보가 없어서 자기들끼리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며 "(여성가족부) 조윤선 장관에게 (매칭 이벤트)를 제의했더니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고 자랑했습니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이미 여성부에 이벤트 계획을 제의했고 언론반응도 파악해보라고 지시했다 하니 어쩌면 상당히 진전된 계획일지 모를 일입니다.
 
<사진제공: 기획재정부>
 
어쨌든 '월하노인'의 걱정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부총리는 "마침 내일이 부부의 날(5월21일)이라는데 여사무관이 서울에 있으면 남자 만날 기회도 많고, 재즈바도 있고, 비어바도 있는데 여기선 남자직원처럼 이거(술) 할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리는가 하면 "과장 평가할 때 (미혼의 남녀를 연인으로) 맺어주면 가점을 주겠다고 했다"면서 "과장들한테 일만 챙기지 말고 이런 문제도 챙기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습니다.
 
심지어 "여성가족부 장관이 도와주겠다"고 거들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으니 어쩌면 기재부와 여성부 공무원의 인연 맺기 이벤트를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세종시에 근무하는 미혼의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사생활은 거의 없다"는 말로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 적령기의 훌륭한 인재들이 이성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해 결혼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쯤으로 여길 수도 있고요. 
 
나라곳간을 책임지는 경제부총리마저 사석에서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으니까요.
 
부총리의 고민은 일에 쫓기는 기재부의 미혼공무원이, 적막하기 그지없는 세종시로 이주하는 바람에, 연애 기회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죠.
 
특히 술자리를 즐기지 않는 여성은 만남의 기회를 더 많이 박탈당하지 않겠느냐는 건데요.
 
부총리가 안쓰럽게 바라보는 미혼 여성 공무원이 기재부 안의 소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른바 성비만 놓고 보면 기재부는 남초현상이 두드러진 곳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사무관과 서기관 470여명 가운데 여성은 100여명 정도에 그친다고 하고요, 그 100여명 가운데 미혼여성을 따져보면 수는 더 줄어들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총리가 유독 이들의 목소리가 맘에 걸려 담아두고 있었다는 건데요.
 
지난 16일 예산실 최초로 '여성 과장'이 탄생한 배경으로 실국별 간담회에서 터져나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부총리가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이란 시각도 있는 듯 하더군요.
 
물론 화제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기록에 남을 만한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지만요.
 
부총리의 성평등 감수성을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은 또 있습니다.
 
부총리는 최근 "우리 경제가 '엄마'라고 외칩니다"란 제목으로 여성부에 글을 올려 작은 화제를 뿌리기도 했는데요.
 
내용은 "여성인력 활용이야말로 '늙어가는 거시경제'에 제동을 거는 가장 현실적 방안이고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부총리는 이 글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9.7%에 불과한데, 국민소득이 3만~4만달러 되는 나라들은 60~70%에 이르는 것만 봐도 여성 활용이 경제성장의 필수요인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가정의 달에는 '지금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남성일지 모르지만 향후 우리경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여성을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잡길 기대해본다"고 썼습니다.
 
 
 
 
사실 내용자체는 평범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장관들끼리 공개된 지면을 통해 글을 주고받는 모습 자체는 이례적이라 할 만하죠. 조윤선 여성부 장관이 이 글을 메인홈페이지에 띄어놓고 감사를 표시했으니까요.
 
부총리의 이번 기고는 평소 친분 있던 조윤선 장관의 부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하는데요.
 
어쩌면 '매칭 이벤트'도 '여성부 기고'도 부총리가 번외카드로 잠깐 꺼내든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 가야겠습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성평등 감수성에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성대통령이 등장했음에도 피부로 느끼는 성평등지수는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다보니 원론적 수준일지언정 그마저 반갑게 다가오네요.
 
중요한 건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 시각입니다. 
 
굳이 여성사무관을 지목해서 매칭 운운하는 립서비스보다 실제 업무에서 여성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발언들과 동등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의 정책의 배려가 더욱 필요해보입니다.
 
경제부총리의 보다 진전된 성평등관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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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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