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불구속기소..황교안, '상처뿐인 승리'

'몽니'로 진통·소문 키우며 검찰 정치적 중립성 훼손
박근혜정부 '정당성' 위기 직면

입력 : 2013-06-11 오후 4:51:29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하기로 한 것은 당초 ‘선거법 위반을 적용한 구속수사’라는 강경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결론이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수사팀을 압박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황 장관은 검찰이 지난달 27일 원 전 원장을 2차 소환조사한 직후 ‘구속수사 필요’로 보고한 데 반대해 사실상 수사 지휘권을 발동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황 장관 본인은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왔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뜻이 관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불가’ 입장은 검찰의 거센 반발에 밀려 관철시키지 못했다.
  
현행법상 법무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할 수 있다. 개별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는 제한되며,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황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입증됐다고 볼 수 있게 됐다.
  
황 장관은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과 인연이 깊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지난2005년 이른바 ‘강정구 교수 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구속수사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황 장관은 당시 “강 교수가 국가안전보장에 매우 위험한 범법행위를 했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어 반드시 구속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검찰의 반발이 거세자 ‘인권보호’ 문제를 제기하며 불구속수사 의견을 냈던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은 사상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수사를 지휘했고,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 총장은 그 직후 항의의 표시로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끝까지 구속수사의견을 고수했던 황 장관은 이후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거듭 탈락하면서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이런 이력은 이른바 ‘소신’으로 비쳐지면서 여야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청문회 당시 권성동 한나라당 의원은 “구속 의견을 제시하는 바람에 동기들 보다 검사장 승진도 2년 늦었다. 후보자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고 황 장관을 추켜세웠다.
    
황 장관도 자신의 이력과 관련해 "법무장관이 개별사건에 대해 일선 검사들의 수사에 왈가왈부 지휘하거나 감독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국정원법·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수사팀의 판단을 정면으로 막은 것이다. 
 
황 장관은 이에 대해 "검찰사무보고 규칙에 따른 ‘소통’ 정도의 의견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보고한 지난달 28일 이후 보름 넘게 사건을 틀어쥐면서 물리적으로 검찰의 구속수사를 무력화 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황 장관이 전 정부의 국가정보기관 수장을 구속하는 데 대한 부담과, 선거법 위반을 적용할 경우 현 정부의 미칠 파장 등 정치적 고려를 한 것이라는 선의의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한 고위 검찰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수사를 해서 사법처리를 할 뿐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한다.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검찰 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수사진행을 막고 있다면 그것은 수사지휘권 문제가 아니라 법무장관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침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수사는 막았지만, 황 장관 자신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의 의견과는 반대로 검찰이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의 판단에 달렸지만, 원 전 원장, 그리고 같이 기소된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민주적 정당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상황에 따라 ‘대통령선거 무효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황 장관은 자신의 ‘몽니’로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한 법무장관, 대통령에 대한 보좌에 실패한 장관이라는 부담만 안게 됐다. 27년여 동안 몸을 담았던 검찰 후배들로부터 곱지않은 시선을 받게 된 것 역시 뼈아픈 일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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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