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금값이 33개월 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월간 850억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 유로존 등 세계 주요국들이 일제히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유동성 확대로 인플레이션이 증가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이 급증할 것이라는 예감에 금을 사들였다. 금이 물가상승 시기에 자산가치를 방어할 수 있는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은 가운데 미 연준이 돈 풀기를 중단하고 유로존을 비롯한 세계 경제 위기감이 완화되자 금의 매력이 확 떨어진 것이다.
향후 금값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금값이 곧 반등할 것이라는 긍정론과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회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금값 폭락..1300달러 선 밑돌아
20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8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6.4% 내린 온스당 1286.20달러로 지난 2010년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금값이 1300달러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2년 만에 처음이다.
◇금값 추이 <자료제공=investing.com>
빌 바루크 이트레이더 선임 전략가는 "물가상승률이 낮은데 버냉키가 출구전략 시기를 언급했다”며 “투자자들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냉키의 발언으로 이날 금값이 폭락하기는 했지만, 금값 하락세는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CNN머니에 따르면 금값은 올해만 18% 추락했다.
물가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금보다 수익이 높은 주식 등에 투자하면서 금값이 꾸준히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그나마 유로존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는 불안감에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매수세가 이어져 오긴 했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금의 매력이 반감됐다.
제임스 코디어 리버티 트레이딩 그룹 대표는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저조하고 유로존 붕괴 위기가 완화되면서 금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금에 대한 신뢰 '추락' · 고수익 기대감 '증가'
금값 하락에는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이 주원인으로 작용했으나 금 고유의 위험회피 기능에 대한 회의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시장의 변동성이 높은 현시점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남아있을 법도 한데 금값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 한 달간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는 35%나 상승했다.
파레시 우파드야야 파이오니아 인베스트먼트 선임 시장 전략가는 "금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의 투자성향이 바뀐 것도 금값 하락을 부추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한 해 동안 투자자들이 자산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높은 수익성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세계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안전자산으로 주목받던 금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위험 선호도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기업들 사이에도 퍼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자산운용전문업체인 노던트러스트와 블랙록은 올 1분기 동안 금 보유량을 꾸준히 줄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전문가는 12년간 강세를 보인 금, 은을 비롯한 금속 시장이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금값 "1150달러까지 더 떨어져" VS "1400달러로 반등할 것"
금값이 앞으로도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견과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견해로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뉘었다.
금값 하락을 예상한 전문가들은 세계경기 회복과 투자성향의 변화를 근거로 들었고, 상승을 점친 이들은 원자재 수요 증가와 부채국 위험 상존 등을 지적했다.
릭 스푸너 CMC 마켓 수석 마켓 애널리스트는 "향후 몇 달간 금은 1150~1300달러 선까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임스 코디어는 "사람들이 고정수익을 얻는 픽스드인컴(Fixed Income) 형식의 투자를 선호하면서 금값 하락세는 심화될 것”이라며 "120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올해 금값 전망치를 종전의 1600달러에서 10% 내린1440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프랑스 종합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오는 4분기 금값 전망치를 기존의 1375달러에서 1200달러 선으로 수정했다.
반대로 단기적인 금값 하락은 막을 수 없겠지만 머지않아 반등할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존 콜코란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볼 필요가 있다"며 "몇 년 후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금 투자로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앤드류 수 캠패스 글로벌 마켓 대표는 “금값 폭락은 시장의 과민반응이며 앞으로 이런 하락세는 이어지지 않으리라 전망했다.
그는 오히려 지금이 금을 살 절호의 기회라며 향후 며칠 동안 달러 매수세가 줄어들면서 금값은 14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단타 미마니 애타이트캐피털파트너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앞으로 금은 상승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세계 곳곳 정부들이 부채로 골머리를 앓는 이때 금은 최고의 위험 회피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오웬 하가티 G-리소스 그룹 부대표는 "단기적으로 금값은 변동폭이 크겠지만,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금을 비롯한 원자재 수요는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