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희주기자]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의 '연내 양적완화 축소' 발언에 신흥국의 금리가 상승하고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등 금융위기 가능성이 불거졌다.
버냉키쇼크에 미국 금리 상승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이 급격히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 채권,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머징마켓에서의 외국인 투자자금유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됐다.
특히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는 증시 급락과 환율 급등을 비롯해 국채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해 사실상 국채가 거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리상승에 통화가치 하락..금융위기 가능성 '솔솔'
지난 4년 동안 선진국에서의 양적완화와 낮은 기준금리 정책은 고수익자산 투자가 가능한 신흥국으로 자금을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간 양적완화 혜택을 누려온 신흥국들은 미국 연준의 출구전략 논의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금리가 높아지는데다가 통화가치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홍콩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연초 대비 1.29% 상승했다. 중국의 3개월물 금리는 연초 대비 3.9%P 급등하면서 무려 8.5%를 기록했다.
동유럽 국가 중 러시아는 루블화가 달러 대비 약 7% 절하됐다. 특히 10년물 국채금리가 7.74%인데 반해 단기 3개월물 금리가 그와 비슷한 7.03%를 기록하고 있어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터키는 달러 대비 8% 상승, 10년물 금리는 1.9%P 급등하면서 러시아에 이어 동유럽 국가 가운데 위험이 높은 국가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위험도가 가장 많이 상승한 국가는 중남미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의 헤알화는 달러화 대비 약 8.5% 상승하면서 약세가 심화됐고 10년물 금리는 토빈세 폐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초 이후 계속 상승해 11.45%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3개월물 금리는 무려 18.25%로 사실상 국채가 거래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브라질 10년만기 국채금리(자료출처=인베스팅닷컴)
또 미국의 낮은 금리 덕분에 그동안 신흥국들은 외채 비중을 늘려오면서 경기를 부양시켰으나 양적완화 축소에 과도한 이자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 태국의 외채는 지난 4년 간 연평균 각각 19.2%, 19.6% 증가했고, 브라질은 13.8%, 인도네시아는 13.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터키의 단기외채는 외환보유액의 130.8%에 달하고 아르헨티나는 8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리델 리델리서치그룹 대표는 "신흥 시장이 미국 달러 자산 부양을 위한 희생양이 됐다"며 "신흥국 중에서도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위험도가 가장 많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신흥국 자금조달 위기..국채발행 좌초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신흥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던 '달러 캐리트레이드'가 축소되고 있다.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신흥국에서는 지난 3주간 190억달러 이상의 투자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브라질증시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56억달러가, 인도채권에서는 32억달러가 이탈했다.
스테판 젠 SLJ마르코파트너스 공동창업자는 "이것은 지진이 오기 전의 작은 떨림에 불과하다"며 "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어 이머징 시장의 엄청난 둔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자금의 급격한 이탈에 신흥국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2008년 이후 국채발행 금리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신흥국들이 국채발행을 포기하는 사례도 포착되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루마니아는 2억달러 규모의 7년만기 국채발행을 취소했고, 러시아도 100억루블 규모의 국채발행을 포기했다. 러시아의 국채발행 취소는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다.
그 밖에도 콜롬비아는 20년만기 페소 표시 국채발행 물량을 당초보다 40% 축소했고 중국의 국채발행 역시 목표 조달금액에 미치지 못했다.
마이클 샤올 마켓필드자산운용 대표는 "현지 통화로 발행하는 국채는 아무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금조달이 더 어려울 것"이라며 "달러 표시 국채 역시 금리 상승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신흥 시장의 국채 발행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 "신흥국 각국에 맞는 경제정책 수립해야"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신흥국에 연준의 출구전략 논란 여파를 완화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게리 라이스 IMF 수석 대변인은 "각각의 신흥국들이 각국에 특화된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국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정책은 신흥 시장이 미국의 금리 상승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신흥국들은 시장 유동성과 자금 유출의 범위에 따라 정책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시장 기능을 질서있게 유지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라이스 대변인은 "최근 금융위기가 신흥국 시장에 정책을 재구축하고 취약점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줬다"며 "이는 신흥국이 향후 시장의 불안정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IMF는 미국 경제 연례 평가보고서를 통해 연준의 양적완화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경기 회복에 큰 보탬이 됐으나 그에 따른 예기치않은 결과도 수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라이스 대변인은 "구체적인 미국의 출구전략 시기를 예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며 "효과적인 소통전략으로 출구전략에 따른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폴 크리스토퍼 웰스파고어드바이저 수석스트레지스트는 위험성이 가장 부각되고 있는 브라질에 대해서 "중앙은행이 일정 범위 내에서 레알화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하지만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웨이 장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연준이 본격적인 양적완화 축소에 돌입하기 전에 확실한 전략을 짜둬야 한다"며 "그러나 충격의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향후 몇 달 간 디레버리지(빚 상환) 과정에서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제조업이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