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대화록 봤다던 정문헌, 왜 3년 뒤 대선때 폭로했나

박 대통령도 대화록 봤나 의혹 증폭..정치적 위기 모면하려 꺼낸 NLL 카드에 '자승자박'

입력 : 2013-06-28 오후 6:04:59
[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처음 본 시기에 대해 청와대에서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하던 2009년 즈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4 정상회담 1주년 즈음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록을 가져오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국정원의 발췌록 보고서가 청와대에 올라갔고, 작성 시점에 대해선 "2급 비밀 공공기록물로 낮춰진 시점을 고려하면 2009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용을 보고 노한 이 전 대통령이 원본을 요청했고, 보고에 앞서 비서관 신분으로 일독했다"며 "2010년에도 이 전 대통령이 재요청해 그 과정에서 내용보고를 들어 숙지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결국 정의원은 MB정부 통일비서관 신분이었던 2009년에 이미 국정원이 작성한 발췌록과 원문 모두를 두 차례 본 것이다. 그는 통일비서관에서 2011년초에 물러난 뒤, 2012년 4월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처음 '정상회담 대화록'을 언급하며 'NLL 공세'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그해 10월이다. 19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그는 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알게 된 시점으로부터 3년, 국회의원이 임기 시작 후 4개월이 지나서 'NLL'을 터뜨렸다.
 
여기서 그는 왜 대선을 두달여 앞둔 2013년 10월이 돼서야 'NLL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정 의원이 'NLL 폭로'를 한 지난해 10월은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논의가 한창 급물살을 타던 때였다.
 
3자 대결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우세가 예상됐지만,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봇물을 이루던 시기였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에 대해 '결국은 조직을 가진 문재인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문 후보와 민주당에 큰 생채기를 내면서 동시에 대선판을 뒤흔들 이슈가 새누리당에겐 필요했고, 그 이슈를 정문헌 의원이 대선 두달 전에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결국 'NLL 이슈'는 새누리당의 기대대로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단일화가 모든 대선 이슈를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NLL 폭로'는 이슈를 양분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대선 기간 내내 'NLL 이슈'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정 의원의 폭로 한달 전, 언론인터뷰에서 '서해 공동어로구역' 추진 가능성을 긍정하던 박근혜 후보의 자세도 정 의원의 'NLL 폭로'를 전후로 180도 달라졌다.
 
그 당시 앞뒤 정황과 정국 흐름을 종합하면 대화록은 MB정권 내내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 공유하고 있었으며 대선 기간 가장 효과적인 시점에 활용됐다는 의미가 된다.
 
'NLL 문제'는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여타의 '안보 공약'을 가리며, 문 후보에게 큰 짐이 됐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결국 승리했다.
 
박근혜 캠프측 인사들이 대선 기간에 '정상회담 대화록'을 입수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과정에서, 또 한가지 밝혀지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측 인사들은 '대화록' 전면 공개에 부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은 새누리당의 지속적인 요구, 심지어 검찰에 고발된 상황에서도  대화록 공개를 거부했다. 원세훈 국정원이 지속적으로 야당에 대한 여러 공작을 진행했음에도 그는 대화록 공개만은 거부했다.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원세훈이 협조를 안 해줘가지고 결국 공개를 못했다"는 김무성 의원의 '셀프자백'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대화록을 봤다'는 발언으로 새누리당에게 힘을 실어줬던 이명박 청와대의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도 "대화록 공개는 국가의 품격과 관련된 문제"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사진=청와대)
 
그러나 박근혜 후보측 인사들은 지속적으로 대화록 공개를 요구했다. 대선 당시 국정원을 지속적으로 압박한 것은 물론, 대선 직전 'NLL 문건' 관련한 고소고발 건으로 검찰이 국정원으로부터 문건을 건네받았다고 알려지자 검찰에게 문건 공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와 김무성 의원의 발언으로 이제 관심은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NLL 대화록을 봤느냐의 여부로 쏠리고 있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으로서는 정치적 위기 돌파를 위해 꺼내든 NLL 카드가 오히려 스스로를 옭아매고 박 대통령한테까지 화살을 겨누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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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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