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증권사 CEO들이 불쌍하다

입력 : 2013-07-16 오후 3:44:13
한 마디로 그들은 불쌍하다. 증권사 CEO들 얘기다.
 
그래도 CEO인데 뭐가 불쌍하냐는 반론이 충분히 나오겠지만, 내가 지켜본 그들은 확실히 불쌍하다.
 
지금 여의도에는 구조조정이니, 퇴출이니 하는 으스스한 단어가 떠돌고 있다. 지점을 축소하고, 사라지는 부서도 등장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CEO 자리도 가시방석이다.
 
증시가 침체의 길을 걸으면서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던 증권사의 수익구조가 악화된 것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필자가 증권업계를 처음 출입했던 2000년 초반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여의도 증권가에 나돌았다.
 
본질적으로 생각해보자. 언제는 한국 경제가 좋다는 이야기가 존재하기는 했었나? 어쩌다가 호황이라는 좋은 시절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늘 먹고 살기 힘들었다. 아마 인류가 존재한 이후 먹고 살기 좋았던 시절은 한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요순시대가 어쩌고 하지만, 그건 그 통치자들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무슨 낙원이 존재했던냥 생각하면 아주 순진한 이해일 뿐이다.
 
다시 증권가로 돌아가보자. 여의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분다느니, 감원을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돌 정도면 뭔가 난리가 났을게다.
 
난리가 난 배경은 이익 때문이다. 증권사들의 2012년 영업이익은 8101억원으로 추산된다. 2011년 1조4839억원에 비해 분명히 줄어든 수치는 맞다. 그래서 난리가 난거다. 어닝쇼크니 어쩌니 하면서 요란법석을 떨고 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보통 '어닝쇼크'라고 하면 무슨 엄청난 적자가 난 줄 안다. 회사가 금방 망하게 생긴줄 안다. 하지만 어닝쇼크는 그냥 적자가 난 경우 뿐만 아니라 이익이 줄어들었을 때에도 사용하는 용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어닝쇼크라고 하면 '이익이 났다'는 사실은 사라져버린다. 
 
아닌 말로 수많은 기업들이 명멸해가는 시장이다. 적자를 견디지 못해 파산하는 기업이 한 둘이 아니다. 야반도주하는 기업주들도 수두룩하다. 공장 문 닫고, 노동자들은 졸지에 실업자로 길거리에 나앉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익이 났으면 잘한거 아닌가?
 
무슨 난리가 난듯이 구조조정설이 나돌고, 월급쟁이들 마음 졸이게 하는 이 상황이 솔직히 코메디같다. 이익을 내고도 구조조정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체 주주들은 얼마나 이익을 가져가야 만족하는 것일까?
 
적자도 아닌 흑자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익규모가 줄어들었으니 경영책임론도 당연히 나온다. CEO라고 월급쟁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야말로 파리목숨이다. 주주들 주머니를 두둑히 채우지 못한 죄로 물러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미 여러 명이 물러났다. 그리고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는 CEO들도 많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대단한 경영권을 행사했느냐? 결코 아니다. 필자가 지켜본 바로 증권사 CEO 만큼 권한이 작은 CEO도 없다. 거창한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2년 소계도 못세운다. 장기비전은 언감생심. 적자도 아니고, 이익이 줄었다는 이유로 자리를 내놓아야 할 처지에 무슨 장기비전인가? 
 
증권사 CEO들 인터뷰를 본 적 있는가? 거의 없을거다.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건 권한이 없다는 이야기다.
 
증권사 CEO들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점포를 늘리고 줄이고, 부서를 줄이고 늘리고, 사람을 줄이고 늘리는 이런 일 밖에 못한다. 줄어드는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각종 접대비 줄이고, 광고비 줄이고, 급여 줄이고, 종이값 줄이고, 전기료 아끼고 그렇게 이익을 보전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골드만삭스니 JP모건이니 하는 글로벌 투자회사처럼 성장하는 꿈이 가당키나 한가? 우리 솔직히 말해보자. 고작해야 2년짜리 CEO들이 그런 거창한 비전을 세우고 준비를 할 수 있는 경영여건이기는 한가? 
 
그러니 필자가 증권업계를 떠났던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가 너무 많다느니, 수수료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다느니, 글로벌 투자회사로 성장하지 못해서 이 모양이느니,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10년전에도 했던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쿠쿠밥솥 이야기다. 
 
범LG가로 출발한 쿠쿠전자는 LG그룹 덕을 좀 봤다. LG전자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납품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사람도 어느 정도 키가 자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듯이 쿠쿠전자도 성장이 멈췄다. 1988년부터 10년간 정체상태였다. 40여명이나 되는 연구원들은 거의 그냥 공부만 하고 있었다. 생산라인이 놀고 있는데도 직원 숫자는 그대로였다. 쿠쿠전자 CEO는 연구원들도, 노동자들도 자르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1998년 IMF 위기를 맞딱뜨렸는데도 사람을 자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정적인 매출처였던 LG전자 OEM을 포기하고 자체 브랜드로 허허벌판에 나왔다. 여기저기서 비용 줄이고 있을 때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그 결과 쿠쿠전자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밥솥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가며 장기비전을 갖고 회사를 경영한 결실이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구조조정이니, 비용절감이니 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증권사는 어떤가? 그나마 대주주가 CEO 역할을 겸하고 있는 회사는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의 증권사는 장기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주주들 배당금 두둑히 챙겨주기 위해 하루 하루 연명하는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 여름 장마철에 여의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분다느니, 어느 증권사 CEO가 물러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들리는 걸 보면 증권업계 싹수가 노랗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한낱 고액 월급쟁이에 불과한 증권사 CEO들도 겉으로는 '전문경영인'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있다. 내 눈에는 파리목숨같은 고액 월급쟁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래도 고액 월급쟁이인데 뭔 걱정이냐고? 토끼가 사자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자가 아니라 덩치가 좀 큰 토끼일 뿐이다. 수많은 월급쟁이가 궁극에 다다를 수 있는 미래일 뿐이다.
 
그나저나 10년전과 똑같은 이야기가 나도는 걸 보면 앞으로 10년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스친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파리목숨같은 CEO들이 명멸해갈테고….
 
권순욱 증권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권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