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장시간 근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노동 환경에서 '시간제 일자리'와 같은 새로운 일자리의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극심한 현실 속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을 개선해 장시간 근로 해소 및 유연 근무의 확산,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10명 중 3명 이상이 안정적인 시간제 일자리를 갖고 있는 네덜란드와 같은 고용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여전히 장애요소가 많다. 임금과 처우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큰 현실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고용의 질 또한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기업의 노동비용 또한 급증될 전망이다.
◇모델 국가 '네덜란드'..시간제 일자리, 전체 일자리의 37% 차지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 일자리 로드맵'에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방안을 담으면서 모델로 삼은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시간제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의 37%에 차지할 만큼 시간제 일자리의 비중이 높은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평균이 16.6%이고, 독일과 영국 등 소수 국가 정도만 20%를 넘는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제 일자리가 직종 구분 없이 고루 분포돼 있다. 시간제와 전일제의 전환도 자유롭다. 이같은 배경에는 지난 1982년 체결된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Wassesnarrs Accord)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덜란드의 노동총연맹과 사용자연맹, 정부가 맺은 이 협약으로 노사정은 각각 임금 동결과 고용 안정, 사회적 협의를 주고 받았다. 결국 정부 중재로 이뤄진 이 협약으로 네덜란드는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확립했다.
네덜란드는 이와 같은 노사정의 노력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으로 1994년 63.9%였던 고용률을 5년 후인 1999년에는 70.8%까지 끌어올렸다. 고용률 70% 달성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정부 "시간제 일자리, 최저임금·4대보험 등 기본적 근로조건 보장"
정부는 이같은 네덜란드의 사례를 본보기 삼아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 10개 중 4개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만들 계획이다. 로드맵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49만개였던 시간제 일자리는 5년 후인 2017년까지 242만개, 즉 93만개가 늘어난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올해 고용부가 조사한 남녀 고용평등 전국민 의식조사 결과, 국민의 63.5%, 여성의 69.4%가 향후 시간제 일자리로 일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며 "시간제로 일하기를 원하는 국민은 어떤 편견도 없이 여건과 상황에 맞게 기꺼이 시간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로서의 시간제 일자리 인식을 개선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우선 최저임금, 4대보험 등 고용의 안정성 측면에서 기본적인 근로조건을 보장할 계획이다.
특히 편의점, 햄버거점, 커피전문점, 주유소 등 아르바이트형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최저임금 준수 및 사회보험 가입 확대를 추진하고, 시간제 근로에 있어 '근로시간 비례 보호 원칙'을 법령에 명문화할 방침이다.
방 장관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 등을 거쳐 초과근로 제한, 근로시간 비례보호 원칙 명시,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부여, 시간제 적합 직종 지정·권고 등을 담은 '시간제 근로 보호 및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올해 안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고용의 질, 노동비용..'산 너머 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문화를 정착시키기에는 여전히 장애요소가 많다.
국내 고용 현실을 놓고 보면, 임금과 처우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큰 현실에서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에서 국내 노동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또 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설령 택하고 싶다 해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인식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문화를 정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평가다.
때문에 결국 정부가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데만 집착해 일자리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올바른 방향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고용률 70% 라는 박근혜 정부의 방향이나 목표에 대해서는 큰 방향에서 옳다고 보지만 근본적인 가치 전환 없이는 안 된다"면서 "수량적 성과주의에 급급한다면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고 고용의 질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542명의 48%가 시간제 일자리 정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임금과 복지'를 꼽았다.
바꿔 말하면,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시간제 일자리의 고용안정성과 일자리의 질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2012년 시간제 일자리 창출 지원현황' 자료만 보더라도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의 평균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63.3%에 불과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은 저임금 일자리라는 문제가 있다"며 "우리나라의 고용여건상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보다는 저임금 업종의 무기계약직 일자리가 지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의 시간제 일자리를 정규직 수준의 보험 혜택과 임금 등을 제공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바꿀 경우 노동비용이 급증한다"며 "기업은 임금 격차 해소(5조6000억원), 퇴직금 격차 해소(8000억원), 공적 연금·보험 격차 해소(7000억원) 등으로 연간 약 7조1000억원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5년안에 93만개에 달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무리하면 의도와 달리 '질 나쁜' 시간제 일자리를 양산할 수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서두르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차근차근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