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설국열차', 봉준호가 상상한 '새로운 세계'

입력 : 2013-07-25 오전 11:17:39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2004년 겨울, 홍대의 한 만화가게에서 봉준호 감독은 프랑스 만화가 장 마르크 로셰트의 만화 'Le Transperceneige'를 선 자리에서 읽어버렸다. 그리고 10년 뒤 만화에서 느낀 상상을 스크린을 통해 재탄생시켰다.
 
앞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에서 이미 탄탄하고 밀도 높은 연출과 스토리를 만들어낸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는 '설국열차'로 돌아왔다. 더 강력한 스케일과 몰입도, 메시지를 갖추었다.
 
제작비만 약 450억원. 10년 동안 마음 속에 품은 암덩어리를 꺼내놨다는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지긋지긋하게 빠르고 억압된 현실에 대한 탈출이 아니었을까.
 
2031년 인간이 초래한 빙하기에 멈추지 않는 열차가 배경이다. 상상하기 힘든 설정이지만, 그 안의 인물들의 삶은 현실 깊숙히 닮아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건 가진 자와 못 가진자의 구분이다.
 
지배계급층은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 계급층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치열하게 싸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혁명'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반란'이라 말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기차는 성장만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를 연상케 하고, 앞 칸으로 가고자 하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무리는 없는 자들의 욕망을 대변한다. 마지막에는 권력에 흔들리는 인간의 욕망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반발를 저지하고 현실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위압은 대기업 혹은 힘있는 정치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위가 정해져있다"는 대사는 기득권층이 약한 자들을 일개 부품으로 바라보는 논리를 보여준다. 자신보다 더 힘 있는 자에 대한 억지스러운 존경과 충성, 이에 대한 세뇌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불쾌감을 준다. 
 
순수함과 발랄함을 가진 요나(고아성 분)이 마지막에 만난 세상은 기존 시스템이 모두 무너진 새로운 세계였다. 봉준호 감독은 미래를 '원시시대'로 상상한 듯 싶다. 그렇게 작금의 현실을 탈출 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토리가 밀도있게 흐르는 만큼 연출도 세련됐다. 액션이 긴박하게 흐르면서도 감성이 다분히 담겨 있다. 박찬욱 감독의 색깔에 감성이 삽입된 느낌이랄까. 머리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잔인함 속에서도 오케스트라의 평온함이 느껴졌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화려한 면과 어두운 면이 존재하듯, 하수구 같은 꼬리칸과 호화로운 앞칸의 배경을 대조시켰다. 기차라는 협소한 공간 탓에 인물의 얼굴을 마치 배경처럼 꾸민 연출은 일품이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훌륭했다. 메이슨 총리를 맡은 틸다 스윈튼의 연기력은 강렬했고, 혁명의 지도자 커티스를 연기한 크리스 에반스는 무게감이 있었다. 송강호는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국내 탑배우로서의 힘을, 고아성은 한층 성숙한 소녀가 됐음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에드 해리스, 존 허트, 에리스 필, 이완 브램너, 옥타비아 스펜서, 제이미 벨 모두 튀지 않는 범주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거대한 제작비와 봉준호 감독, 탑배우들의 만남은 볼거리도 많고 얘기할 거리도 많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에 무거운 메시지를 담아냈다. 빠르게 소모되는 세상에 지쳐가는 사람이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한 번쯤은 꼭 봤으면 좋겠다.
 
평점을 매기자면 5점 만점에 4.5점을 주고 싶다. 나머지 0.5점은 더 좋은 영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 넣지 않았다.
 
상영시간 125분. 개봉은 오는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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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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