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70조 퇴직연금시장, 8년의 역사 속에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이미 대기업 등 가입할만한 기업들의 가입러시는 일단락됐다. 퇴직연금을 취급하는 금융사는 50여개에 달하지만 이를 통해 수익을 내는 금융사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퇴직연금 유인을 늘려 양적확대를 지속하지 못하는 한 시장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말 현재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70조4526억원으로 지난해 말(67조3459억원)에 비해 4.6%(3조1067억원) 증가했다.
전년 동기보다는 적립금의 증가율은 다소 축소된 가운데 업권별 비중에서는 은행권이 강세를 보였고, 보험권은 후퇴하고 있었다.
◇퇴직연금 성장세 주춤..은행 점유율 50% 돌파
전체 적립금 가운데 은행권역은 36조2989억원로 51% 가량을 차지했다. 특정 금융권이 점유율의 절반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05년 퇴직연금제도 의무 시행 이후 올해가 처음이다.
반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증권부문의 점유율은 떨어졌다. 증권권역의 적립금은 올해 6월말 현재 12조1821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점유율은 지난해 3월 18.8%에서 17.3%로 점차 떨어졌다.
생보권역은 같은 기간 25.0%에서 23.6%로, 손보는 7.7%에서 7.4%로 점유율이 각각 떨어졌다. 특히 생보는 2008년 3월말 43.2%로 은행(39.3%)보다 높았지만 다음해인 2009년부터 뒤처지기 시작했다.
과거 퇴직보험 등 은퇴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던 보험권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은행과 증권이 본격적으로 연금시장에 뛰어들면서 영업 경쟁력에 밀린 것으로 파악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기한이 끝난 퇴직보험계약도 잇따라 다른 업권으로 옮기고 있다"며 "대형 은행은 물론이고 증권에도 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퇴직연금시장은 올 상반기까지 70조원 규모에 이르는 거대연금으로 성장했다. 장래성도 밝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기업연금 규모가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70~80%임을 감안하면 국내 퇴직연금시장은 800조원 이상까지 커질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 퇴직연금시장을 두고 향후 두자릿수 이상 성장 가능한 먹거리라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부익부빈익빈 심화..대형 계열사로 재편 전망
퇴직연금을 취급하는 총 50여개 금융사 가운데 대형사로 분류되는 15개사의 시정점유율이 85%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업체별로는 지난 6월말 기준 삼성생명이 9조7589억원의 적립액을 쌓으며 1위를 기록했고, 신한·국민·우리·기업 등 대형은행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대기업 계열의 보험·증권사나 은행처럼 영업력이 뛰어난 곳이 주류다.
상대적으로 퇴직연금 유치 규모가 적은 중소형 금융사들은 저금리 기조로 인해 이자율 경쟁력을 내세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퇴직연금 성격상 주거래은행 등 해당 기업과 관련이 있는 금융사를 중심으로 퇴직연금을 계약하게 되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이 구조적으로 심화될 개연성이 커졌다.
최근 중소 금융사들의 퇴직연금시장 대탈출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씨티은행에 이어 최근 농협증권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금융권 전체 퇴직연금 사업체는 기존 58개에서 56개로 줄었다. 지난해 시장 철수 의사를 밝힌 메리츠화재의 철수작업도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퇴직연금시장은 금융지주 계열 은행과 대기업 계열 보험·증권사로 재편될 전망이다. 특히 올 하반기 퇴직연금 수수료 공시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계약 체결실적이 미미한 중소 금융사들이 추가로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연금의 경우 앞으로 전산시스템 구축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진다"며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지 못한 회사들은 한계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