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감찰지시, 한상대 前총장 감찰지시 '표절'

당사자에 한 마디 사전 통보 없이 언론에 먼저 공표
의혹단계 '감찰' 언론공표 두고 '찍어내기'식 감찰 반발

입력 : 2013-09-14 오후 7:30:29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찍어내기식 감찰지시' 파문이 검찰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지난해 발발한 검란이 당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대한 무리한 감찰을 지시하면서 발발한 것이어서 이번 사태로 2차 검란 위기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황 장관의 '찍어내기'식 감찰이 한 전 총장의 감찰지시의 '표절'이라는 자조 섞인 불만도 나오고 있다.
 
황 장관은 지난 12일 오후 1시20분쯤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혼외자' 의혹보도와 관련해 "당사자인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된 감찰관으로 하여금 조속히 진상을 규명하여 보고하도록 조치했다"고 언론에 전격 공표했다.
 
황 장관은 "국가의 중요한 사정기관의 책임자에 관한 도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검찰의 명예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더 이상 논란을 방치할 수 없고, 조속히 진상을 밝혀 논란을 종식시키고 검찰조직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 직후 조상철 법무부대변인은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번 조치는 감찰이 아닌 진상조사"라며 "진상을 규명해서 논란 종식시키겠다는 취지"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법무부의 이같은 조치가 진상규명 보다는 채 총장에 대한 사실상 퇴진요구라며 즉각 반발했다.
 
다른 조직도 그렇지만 특히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가 견고한 검찰에서의 ‘감찰’은 명백한 비위가 아닌 의혹 수준에서 이뤄지는 경우 당사자 입장에서는 퇴진 압박으로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사진 왼쪽)과 한상대 전 검찰총장
 
지난해 11월28일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은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검사장)에 대한 감찰착수를 김광준 부장검사의 비리사건을 수사 중이던 특임검사팀에 전격적으로 지시했다.
 
최 중수부장이 대학 동기인 김 부장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연락하면서 '언론에 단호히 대처하라'는 등의 언론 대처방법과 향후 감찰조사에 대한 대응방안을 조언함으로써 검찰 간부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최 중수부장은 "김 부장 검사와이 연락은 한 총장의 지시"였다고 밝히며 즉각 반발했다.
 
최 중수부장은 "김 부장검사의 비리 첩보를 입수한 직후 한 총장에게 곧바로 보고했고 한 총장이 김 부장검사가 대학 동기인 만큼 직접 연락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자신은 이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한 총장의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소식이 전해지면서 이튿날인 29일부터 대검간부들을 중심으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반대와 한 총장에 대한 사퇴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한 총장은 사퇴를 거부하고 대통령에게 신임을 묻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뒤 곧바로 감찰본부를 통해 최 중수부장과 김 부장검사의 문자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후 검찰 내부에서의 한 총장에 대한 사퇴요구는 더욱 거세졌으며 한 총장은 하루 뒤인 30일 사퇴했다. 같은 날 최 중수부장 역시 사표를 제출했으나 반려됐다.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은 계속됐지만 12월4일 대검 감찰본부는 최 중수부장의 비위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황 장관이 감찰지시를 언론에 먼저 공표한 것도 한 전 총장의 최 중수부장 감찰지시 때와 같다.
 
채 총장에 대한 감찰관 조사가 언론에 보도됐지만 당사자인 채 총장은 물론, 대검 간부들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감찰지시 보도가 나간 뒤 20분 후쯤 되어서야 대검 간부들은 총장실로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한 대검 간부는 "이 같은 중차대한 일을 대검에 일언반구도 없이 발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했다.
 
검란 당시 한 전 총장도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사실과 최 중수부장과 김 부장간에 오간 문자메시지 내역을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황교안의 법무부감찰관 감찰지시는 특히 대검 감찰라인에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윤상(44·사법연수원 24기) 대검찰청 감찰1과장은 14일 오전 검찰 내부 통신망인 e프로스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며 "나는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착수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이는 함량미달인 내가 감찰1과장을 맡다보니 법무부에서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협의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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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