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국회, 그들의 고용주는 `국민`이다

입력 : 2013-10-10 오후 5:25:54
지구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슬랩스틱 희극인이자 무성영화 감독 찰리채플린. 그의 1936년작 'Modern Times'는 산업화의 폐단과 그 속을 살아내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절묘하게 풍자한 역작으로 불린다. 70여년이 넘도록 각기 다른 국가에서 각기 다른 역사가 생성되는 동안에도 항상 현시대의 고민에 투영돼 재해석 되고 있다.
 
영화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커다란 시계는 생산과 효율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기는 노동자의 삶을 상징한다.
 
컨베이어벨트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찰리채플린)은 하루 종일 양손에 든 공구로 나사못을 조이는 단순한 일을 반복한다. 자본가인 사장 지시로 작업반장은 기계의 속도를 점점 더 높인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생산성이 증대되고 사장은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
 
공장의 화장실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어 조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동급식기계는 점심식사의 여유조차 사치인 노동자들의 입에 음식물을 투여한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조여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이 영화에서 찰리채플린과 작업반장이 컨베이어벨트의 커다란 톱니바퀴에 끼여 이리저리 돌며 쫓고 쫓기는 장면은 그야말로 슬랩스틱의 진수를 보여준다. 중년 여성이 입은 옷의 가슴팍에 달린 단추를 나사못으로 착각해 조이려는 장면에서는 웃음보가 터진 기억이 생생하다.
 
이 작품은 필자가 1993년 국내 재개봉 당시 우연한 계기로 감상의 기회를 얻은 후 뇌리에 고스란히 박힌 내 생애 최고의 영화중 하나다.
 
특히 채플린 특유의 걸음걸이로 무엇이든 달려들어 조여 대는 대목은 내가 잘못된 습관이나 스트레스를 떼어놓지 못할 때마다 떠오르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오늘날 멈춰선 채 정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는 국회를 보노라니 채플린의 모던타임즈가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과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에 국회의원이란 단어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속한 곳에서 효율성을 제고해야 하는 산업화, 현대화의 산물이라고 보면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리라는 거친 환경속에서 살아가며 채플린이 나사못을 조이듯 무의식으로 의사봉을 휘두르고, 눈을 치켜뜨며 습관처럼 호통만 치니 말이다.
 
다만 우리내 민초들과 다른 면이 있다면 둥글게 돌아가는 시간이란 궤적에는 얽매이지 않는 점이랄까. 급한 것이란 없다는 듯 매년 같은 행동을 여유롭게 반복한다. 국민에 고용된 노동자라는 점은 아예 머리속에 없는 듯 대통령이나 권력자에게 고용된 것인양, 그들이 급여를 주는 것인양 착각하고 사는 것 같다.
 
오는 14일부터 느지막한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예산결산은 커녕 정기국회가 처리할 각종 민생법안 처리를 뒤로한 채 열리는 국정감사다.
 
물론 감사를 통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과 단죄를 물어야 할 것이 산더미다. 국회도 1년 농사 마무리 정도는 해 줘야하기에.
 
1년 내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갑을관계 청산 문제와 4대강 비리 문제가 이번 감사에도 역시 쟁점이 될 것이다. 이를 반영해서일까. 국회는 100명이 넘는 총수 등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정무위는 63명의 증인 중 59명이, 국토위는 76명 중 54명이 재계 인물이다.
 
출석여부는 미지수지만, 좋다. 왜 그랬는지 속 시원히 한번 들어보자. 그러나 벌써부터 '기업 감사냐', '월권이다'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증인을 불러 하루 종일 앉혀 놓고는 잠시 큰소리만 지르다 영양가 없이 마무리 하는 예전의 '호통감사'가 될게 뻔하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기업할동 차질' 이라는 반박하기 좋은 말을 꺼내놓았다. 매년 같은 상황이 반복됐으니 당연히 나올법한 불평이요, 나름 논리있는 반박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현실감 없는 막무가내 호통과 면박이 아니라 이런 순서를 원한다.
 
'날카로운 질문-어이없는 답변-논리적인 공격에 이은 실천 가능한 대안제시'
 
이왕 출석시키는 거라면 가려운 곳을 팍팍 긁어주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시간이 없다. 올해는 당리당략의 강박과 권위적인 습관에서 벗어나 현실에 귀속 돼 보자. 이게 바로 국민이 바라는 국회판 모던타임즈다.
 
박관종 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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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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