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간편한 피서의 방편으로 영화관을 찾은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화제작이었다. 이 영화를 본 독자들이라면 기꺼이 동감하겠지만, 전지구적 스케일의 설원 풍경과 한칸 한칸 앞으로 나아갈 때의 그 긴박감 때문에 서늘한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게다가 여러 평론가, 관객들이 입을 모아 말했듯 꼬리칸 무임승차자들의 처참한 상황과 앞칸 일등석 탑승자를 향한 계급투쟁의 모습은 빈부격차 심화에 따라 사회갈등이 고조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은 듯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최후의 엔진칸에서 맞닥뜨린 열차의 지배자가 사회 운영의 메커니즘이라며 바닥 최하층부터 최상 기득권층까지 각 계층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설파하는 논리는 냉정하다 못해 섬뜩한 느낌이었다.
오늘로부터 딱 한달 전에 보았던 <설국열차>를 이렇게 복습해본 건,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가계부채` 수치를 이야기하기 위한 `복선`이다.
요지는, 가계빚이 지난 6월말 기준으로 980조원을 돌파,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는 내용이다. 더 놀라운 것은 기록 경신이 이번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올해 안으로 1000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올 1월 기준, 남한 인구수가 5000만명을 넘어섰으니 단순계산으로 1인당 약 2000만원의 빚을 대한민국 사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성인과 미성년자의 차이는 금융기관에서 빚을 질 수 있느냐 없느냐 차이라고도 하던데, 말인즉슨, 요즘 우리 사회는 `빚`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포털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대출사기, 카드빚, 채권채무 관계에 얽힌 형사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에도 몇 통씩 급전대출을 부추기는 스팸문자, 스팸메일이 날아온다. 요즘 TV 토크쇼나 인터넷에는 수십억 빚을 진 연예인들 사연이 없는 날이 없던데, 이런 것까지도 과연 시청률 인기 경쟁의 도구가 되나 싶다.
이런 `핫`한 분위기에 기름을 들이붓는 건 정부다. 나라에서 나서서 세금으로 개인 빚을 탕감해준다고 하질 않나, 전세값이 미친 듯이 올라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전세대출을 늘려주겠다, 아예 빚을 조금 더 내서 집을 살 수 있도록 세금도 깎아주고, 은행들을 겁박(?)해서 이자율도 낮추고 대출도 수월하게 되도록 하겠다고 분위기를 잡는다.
급증하는 가계대출의 끝이 무엇이 될지, 과도한 레버리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빚을 져 본 사람들이라면, 그것에서 탈출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게다가 사회안전망 복지시스템이 여전히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빚지기를 부추기는 분위기에 휩쓸렸다가는 겨우 이등석에 자리잡은 사람들도 순식간에 꼬리칸 탑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다. 그 자리를 벗어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도. 지난 몇달간 정부의 경제정책들에 대해 국민의 반응이,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는 <빚: The Horror> (제작/감독/각본/주연: 박근혜 정부)가 절찬 상영 중이다. 작품성도 없고, 재미도 없고, 기분 나쁘게 무섭기만 한 이 영화가 향후 몇년간 장기상영에 돌입할 태세다. 안 보기 캠페인, 게시판에 악평 퍼다 나르기 운동이라도 제안해야 할 듯 싶다.
김종화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