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논란, 제약계로 확산.."의사들 갑질에 속이 곪는다!"

"의사에, 정부에, 약사에..우리는 '을'도 아닌 '정'"

입력 : 2013-10-18 오후 5:17:46
[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갑을 논란이 제약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처방전을 무기로 온갖 '갑질'을 해대는 의사들 횡포에 제약업계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사실 이는 도박과도 같다. 괜히 의사들과의 전쟁에 휩싸였다가 매출 급락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만큼 각오가 짙다는 얘기다. 상위 제약사들이 차례로 당하는 상황에서 위기감은 제약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1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특정 제약사 의약품 처방 반대 움직임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제약업계의 위기감은 극한에 이르렀다.
 
의사들의 집단 움직임은 지난해 10월 검찰이 동아제약을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압수수색하면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검찰이 최근 수사결과를 내놓자 리베이트 혐의에 연루된 의사들을 중심으로 본격화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30일 동아ST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의사들에게 최대 3000만원의 벌금형과 수천만원에 이르는 리베이트 제공 금액에 대한 추징형을 선고했다. 쌍벌제의 일환이었다.
 
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의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의사들을 범법자로 몰아가는 동아제약은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노골적 경고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응분의 대가'에 담긴 함의는 사실상 처방전 보복이었다.
 
의사협회는 특히 “검찰 조사에서는 합법적인 영업활동이라 해놓고 법정에 가서는 리베이트라고 인정하는 동아ST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는 의사들을 범법자로 몰아가는 제약사의 의도된 행동”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적'으로 규정된 동아ST는 벌집이 됐다.  
 
한미약품에 이어 동아ST까지, 국내 상위 제약사들이 의사들의 잇단 보복 타깃이 되자 위기감은 제약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대형 제약사들도 당하는데 중소 제약사로서는 더 꼼짝 못하게 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여기에다 지난 2일 대한의원협회가 긴급 공지문을 통해 동아ST뿐만 아니라 리베이트 조사를 받고 있는 다른 제약사들 제품까지 처방을 금지하자 위기감은 분노로 바뀌었다. "언제까지 의사들의 횡포에 숨 죽이면서 살아야 하느냐. 그들 갑질에 속이 곪는다"는 분개였다.
 
이에 대해 의원협회 측은 “제네릭(복제약)보다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리베이트 제약사들과 인연을 끊음으로써 다시는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며 “처방권을 무기로 제약회사를 압박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제약사들의 울분은 이어졌다. 제네릭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사들의 실상을 누구보다 아는 의사들이 최대 5배까지 비싼 외국산 오리지널 약만을 고집하는 것은 사실상 고립 작전이라며 혹독한 보복이라는 전언들이 터져 나왔다. 
 
법적 논란을 야기할 지적도 제기됐다. 특정 제약사 제품에 대한 의사들의 집단적 처방 반대는 사실상의 담합으로, 불공정거래 행위 소지가 다분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환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치졸한 행위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사가 환자 뜻과는 무관하게 갑자기 다른 약을 처방하는 것은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는 단합이 아닌 담합이고, 본질은 그들의 이해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의사협회가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동아ST를 걸고 넘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울분이 전체 제약업계의 집단행동을 낳을 지는 미지수다. 의사들의 힘을 아는 만큼 제약사로서는 울분을 토하는 것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게 중론이다.
 
실제 한미약품은 지난 2010년 쌍벌제 도입 과정에서 의사들로부터 집단적 처방 반대에 처해져 매출 1000억여원이 감소하면서 업계 5위로까지 추락했다. 한미약품은 당시 창립 이래 처음으로 영업손실까지 기록하는 등 한동안 후폭풍의 여파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46년간 업계 1위를 고수해 온 동아ST도 최근 의사들의 집단 움직임에 매출이 급락, 한숨만을 내쉬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사, 정부, 약사에 둘러쌓인 제약사의 입장을 설명하며 “우리는 ‘을’도 아닌 ‘갑·을·병·정’의 ‘정’”이라고 자책 아닌 자책을 했다. '갑질'의 대명사는 국민건강을 손에 쥐고 자신만의 이해를 추구하는 의사집단이라는 게 제약업계의 진짜 속내라는 설명.  
 
물론 리베이트의 원죄는 신약 개발보다는 영업에서 답을 찾은 제약업계, 그들에게 있다. 부메랑이 계속해서 제약업계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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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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