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이석채 KT회장을 겨눈 검찰 수사의 칼끝이 예사롭지 않다.
검찰은 지난 22일 오전 10시부터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KT본사와 관련자 주거지 등 16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10시간 가까이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회계장부와 컴퓨터 하드 등 증거자료들을 압수했다.
이삿짐용 상자 5~6개 정도 분량으로, 개인비리로만 보기에는 상당한 양이다. 때문에 관련 임직원들까지 사법처리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이 이명박 정권 당시 친이계 인사들을 지근거리에서 관리해왔다는 의혹이 업계와 정계에 돌면서 관련 인사들의 비리로까지 수사가 옮겨 붙을 것이라는 분석도 유력하다.
◇이석채 KT회장(사진 왼쪽)
경북 성주 출신으로 경복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 회장은 '처세의 달인'으로 불리울 만큼 오랜 기간 동안 관계와 재계를 오가며 승승장구했다.
◇전두환 정권 때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
1969년 제7회 행정고시 합격한 이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 시절인 1984년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으로 4년간 일했다.
정권이 바뀌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에도 그는 대통령비서실에서 지역균형발전기획단 부단장,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부단장을 맡아 권력의 측근에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시작되자 그는 본격적인 행정관료의 길로 나섰다.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제1대 재정경제원 차관,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제2대 정보통신부 장관, 대통령실 경제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문민정부 말기 레임덕이 시작되자 이 회장은 관직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미시간대학교 경영대학원 NTT 초빙교수로 있다가 2003년 귀국해 2008년까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일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KT대표 취임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9년 1월 그는 KT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업계에서는 그를 ‘돌아온 장고’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돌아와 한 정권을 기다리다가 화려하게 재기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사장 취임 두 달 뒤에는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는 여전히 KT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기간인 10년을 뺀 20여년간은 청와대나 정부 핵심 부처 장·차관직을 유지했다.
이런 경력만큼 이 회장이 비리와 각종 이권개입 혐의로 그동안 받아온 수사와 재판 이력도 화려하다. 수사와 재판결과는 무혐의 또는 무죄였다.
이 회장이 처음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건 정통부 장관으로 근무하던 1996년부터다.
이 회장은 당시 PCS 사업자로 선정된 LG텔레콤으로부터 사업자 선정 특혜 대가로 3천만원을 받은 혐의와 PCS 사업자 선정 배점 방식을 특정업체에 유리하도록 변경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았다.
◇정통부 장관 재직 중 PCS비리로 구속기소
당시 대검 중수부는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현직 장관이던 이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PCS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점은 인정되지만 현실적으로 결과에 반영된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 회장은 대법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외국으로 돌거나 로펌 고문을 하면서 잠잠하던 이 회장은 KT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수사선상에 올랐다.
케이블TV협회는 2011년 4월 KT 이석채 회장을 방송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협회는 KT가 위성방송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공시청망 공사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등 자회사 KT스카이라이프를 직간접적으로 지원, 방송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KT가 OTS(올레TV스카이라이프)를 광고하면서 위성방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허위광고했다는 의혹과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을 통한 정보통신망법 위반, 불법 셋톱박스를 유포한 전파법 위반혐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사법처리 되지 않았다.
◇근로자 6509명 시간외 근로수당 안 줘 검찰 고발
지난해 5월에는 최근 1년간 KT 150여 개 지사 근로자 6509명의 시간외 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 미사용수당 등 모두 33억100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검찰에 고발됐으나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다.
같은해 3월에는 시민단체가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과정에서의 사기 혐의로 이 회장을 고발했다.
KT는 2011년 '뉴세븐원더스'(The New7wonders·N7W)가 진행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과정에 전화투표 시스템을 제공했고, 제주도가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전화 요금으로220여억원을 지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전화요금을 고의로 높게 책정해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전화요금 정보이용료가 따로 부과됐기 때문에 KT가 부당이득을 얻기 위해 요금을 올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이 회장은 공직에 있으면서 직무와 관련해 네 번이나 검찰과 법원을 오갔지만 한번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분석이 업계와 법조계에서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22일 KT에 대한 검찰의 직접적인 압수수색 동기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고발 건이다.
◇KT사옥 헐값 매각..869억원 손해 의혹
참여연대 등은 지난 10일 이 회장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KT사옥 39곳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28곳의 사옥을 감정가의 75%만 받고 특정펀드에 매각해 최대 869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끼쳤다며 고발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2월에도 친척인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이 설립한 ‘OIC 랭귀지 비주얼’을 KT 계열사로 편입시키면서 실제주가보다 비싸게 값을 치러 KT에 약 7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이 회장을 고발했다.
그러나 이 외에도 검찰이 밝히지 않은 이 회장의 혐의는 서너 개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권 인사로서 현 정부가 탐탁치 않게 생각해 쳐내려 한다는 정치적인 분석 외에도 이 회장의 사법처리 및 형사처벌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명박 정권 당시 KT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면서 영포라인 기업 등 친 MB 기업에 계약을 밀어주고 ‘친이(李)계열’ 인사들을 대거 등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들여다 보고 있는 눈치다.
이 회장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양호산)는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이 회장을 직접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으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