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의 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감염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사실을 환자의 전 진료기관 의사에게 말한 것만으로는 업무상 비밀누설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자신에게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가 AIDS 환자라는 사실을 누설한 혐의(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위반)로 기소된 의사 이모씨(35)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L씨는 AIDS환자로 2003년부터 보건당국의 관리를 받아왔으나 이를 숨긴 채 지난해 1월 이씨의 대학동기 정모씨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편도선 수술을 받으려다가 정씨의 병원에서는 수술이 안 된다고 하자 정씨의 소개를 받아 이씨의 병원에 내원했다.
이씨는 L씨에 대한 자체 혈액검사 결과 HIV감염수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자 전문혈액검사기관에게 재검을 의뢰했으나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에 이씨는 'HIV감염수치가 높게 나와 추가로 확인하기 위해 수술을 연기해야 한다'고 설명했으나 L씨는 이를 거부하면서 '다른 병원에서 수술할 것이니 진료기록을 폐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L씨가 다른 병원으로 가기 위해 정씨로부터 새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L씨 HIV수치가 높게 나와 수술을 연기하려고 했는데 다른 곳에서 수술받겠다며 돌아갔다. 진료의뢰서를 떼러 다시 찾아갈 수도 있으니 알고 있어라"고 알려줬다.
이후 L씨는 정씨의 병원에서 새 진료의뢰서를 발급 받다가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씨를 비밀누설 혐의로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L씨가 AIDS감염자라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이씨가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L씨의 AIDS 감염사실을 알린 것은 관련법상 금지하고 있는 비밀누설에 해당한다"며 유죄로 판단, 벌금 2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씨는 정씨에게 L씨가 AIDS감염자라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고 L씨로부터 자신이 감염자라는 사실을 듣고서야 알게 됐다"며 "단지 'HIV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내용만을 말한 것을 'AIDS감염'사실을 누설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이씨에 대한 공소사실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원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사진=뉴스토마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