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찍어내기 배후설' 사실로? 수사망 좁혀가는 검찰

'혼외자' 개인정보 불법유출 의혹 서초구청 국장 '원세훈 측근'
원 전 원장 기소되던 날 조회, '혼외자' 의혹보도 다음날도 불법 조회

입력 : 2013-11-27 오후 5:26:02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잠시 가라앉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사건이 재차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채 총장 찍어내기 배후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검찰은 채 전 총장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다 혼외자로 지목된 채 모군과 어머니 임모씨의 개인정보가 공공기관에 의해 불법적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배후설'은 지난 9월6일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처음 보도했을 당시도 제기됐다.
 
당시 조선일보는 채 모군이 채 전 총장의 '혼외자'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와 출국일자, 초등학교 기록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이 같은 자료는 본인이 아니면 조회할 수 없는 기록들이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입수한 정보의 출처가 국가기관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곳은 국가정보원이었다. 구청과 교육청,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등 각기 다른 국가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국가기관은 국정원 외에는 사실상 없다.
 
게다가 당시 검찰과 국정원의 사이는 여간 껄끄럽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전직 국정원장을 두 번이나 소환조사한 끝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주요 간부들 역시 같은 혐의로 기소했다.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게 압수수색도 당했다. 국정원으로서는 처음 맛보는 수모였다.
 
앞서 지난 4월18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수사가 경찰로부터 넘어오자마자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곧바로 수사에 돌입했다.
 
같은날 채 전 총장은 "국정원 관련 의혹사건 일체는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인 만큼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각종 간부회의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의 엄중한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 특별수사팀이 국정원에 대해 전례 없이 강도 높은 수사를 실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채 전 총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결국 검찰은 여러 진통 끝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대선개입 혐의를 받은 국정원 핵심간부들을 국정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경찰이 국정원법 위반으로만 결론을 낸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국정원 배후설'은 의혹 수준에 불과했다. 정황이 아무리 그럴듯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그를 뒷받침할 만한 사실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서울 서초구청을 압수수색하면서 '국정원 배후설'에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 국정원 배후설의 연결고리는 원 전 원장이다.
 
검찰은 채군의 개인정보가 서울 서초구청에서 처음 불법 유출된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 20일 서초구청과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의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또 가족관계등록부 등 개인 정보관련 서류를 발급하는 서초구청 'OK민원센터'와 구청 감사담당관 임모 과장의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앞서 검찰은 서초구청 실무담당자를 소환해 조 국장이 외부인의 요청을 받고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불법 조회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국장은 원 전 원장의 측근이다. 서울시청 근무 중 조 국장을 만난 원 전 원장은 2008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조 국장을 행정비서관으로 데려갔다.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행정안전부에 있던 조 국장을 파견형태로 국정원에 배치했다.
 
진익철 서초구청장도 원 전 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로,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같은 행정고시 출신인 두 사람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서울시청에서 함께 일했다.
 
범위를 확대해보면 시기적인 면에서도 원 전 원장과 채 전 총장 '혼외자' 의혹 보도는 관계가 깊다.
 
앞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서초구청 관계자는 조 국장이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불법 조회한 날짜가 지난 6월14일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날은 검찰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날이다.
 
바로 전날에는 '4대강 입찰담합 비리'를 수사 중이던 검찰이 원 전 국정원장의 뇌물수수 정황을 포착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 조간에는 이날 검찰이 발표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결과가 그대로 보도됐다.
 
이에 채 전 총장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격노하며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대검 감찰본부는 즉시 경위조사에 착수했으나 6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9월7일에도 청와대 관계자로 알려진 모 인사가 서초구청을 방문해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열람을 요청한 사실을 서초구청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인 9월6일은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처음 보도한 날이다.
 
채 전 총장은 퇴임한 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정정보도청구소송까지 취하하면서 사실상 수세에 몰려 있었다.
 
언론의 관심도 11월 초순쯤 입장을 밝히겠다던 혼외자 모친 임씨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일부 시민단체가 임씨를 채 총장과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지만 임씨가 채 전 총장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했느냐에 대한 법적 의문과 함께 구체적인 수사 진척은 어려운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 9월26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시만단체가 한부모 가족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유출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등으로 조선일보와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고발한 건이 있었다.
 
이 고발 건에 대한 수사가 진척이 되면서 원 전 원장의 측근이 자료를 유출한 것이라는 의외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검찰은 현재 서초구청과 조 국장 자택 등에서 압수해 온 증거들을 분석 중이며, 조 국장과 임 과장 등 개인정보 불법 유출과 관련된 관계자들을 불러 불법유출 경위 등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요원하던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사건이 새 국면을 맞으면서 ‘배후설’의 실체가 밝혀질지를 두고 검찰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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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