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법원이 한 공무원을 자살로까지 몰았던 원인이 과도한 업무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 결과를 근거로 삼은 판결을 내놨다. 심리적 부검이 재판절차에 도입돼 결과를 이끌어낸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고법 행정합의9부(재판장 박형남)는 심모씨(45·여)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지급부결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여태까지 법원은 자살로 인한 업무상 재해 사건에서 정신질환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업무가 정신질환을 유발했는지 등을 심리하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의 감정서는 법원 판단의 근거가 됐다.
다만 진료기록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고인이 생전에 진료를 받지 않았다면 감정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감정의사가 제출한 감정서만으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이같은 한계점을 인식하고 전문가에게 심리적 부검을 의뢰했다. 자살사례를 연구해 온 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민성호 교수가 감정인으로 나섰다.
민 교수는 고인과 관련된 공무상 서류를 검토하는 한편 고인의 배우자와 자녀, 부모, 직장 동료 등을 면담했다. 이를 통해 고인의 자살 원인으로 과중한 업무, 승진 좌절에 따른 실망감 등을 꼽았다.
재판부와 원고, 피고 측은 법정에서 민 교수에 대한 감정인 신문을 실시했다. 법원은 감정의견이 타당하다고 보고 1심과 달리 심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고인이 초과근무를 하면서 많은 업무량을 처리한 점, 직원이 충원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점, 특별승진 대상자에서 제외돼 절망감과 배신감을 느낀 점 등에 비춰 공무와 사망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시했다.
세무공무원 김모씨가 2009년 11월 자신의 아파트 2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사망한 김씨가 입은 바지에서 '내 죽음은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란 것을 확실히 밝혀 둡니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발견됐다.
그러나 공무원연금공단은 고인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며 보상금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김씨의 처 심씨가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