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해산심판 '형사소송절차' 따르자더니..말 바꾼 헌재

지난해 6월 헌재법 개정의견 국회 제출 때 "형사소송법 준용"
통진당 해산심판엔 명백한 이유 설명 없이 "민사소송법 준용"

입력 : 2014-01-06 오후 5:57:18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가 'RO사건'에 대한 수사·재판 기록을 요청한 가운데 이번 심판에서 민사소송절차를 준용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적정성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앞서 헌재는 지난 달 24일 공개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헌법재판소법과 심판규칙을 검토한 뒤 전원재판부 논의를 거쳐 민사소송법 규정을 준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법 40조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관해서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민사소송절차는 증거조사를 먼저 거쳐야 하는 형사소송과는 달리 당사자가 제출하는 기록 가운데 증거를 비교적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실제로 법무부는 지난 4일 국가보안법 관련 판결문과 독일의 정당해산 심판 판결문 번역자료 등 무려 1톤 트럭 3대 분량의 자료를 제출한 바 있다.
 
헌재가 법원과 검찰에 수사·재판 기록을 요청한 것도 앞서 이번 심판을 민사소송절차에 따르기로 한 것에 비춰 사전 증거를 미리 확보함으로써 심판 진행에 속도를 내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4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사건과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사건의 첫 번째 준비절차기일을 열고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가 이 사건 주심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 왼쪽이 김창종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사진=전재욱 기자)
 
그러나 헌재의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민사소송 준용 방침은 무엇보다도 지난해 헌재가 스스로 국회에 제기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의견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는 지난해 6월14일 헌법재판소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면서 "정당해산심판의 경우에는 정당의 주요조직이나 간부 등에 대해 압수·수색이 가능하도록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른바 '재판소원'도 함께 주장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같은 주장은 앞서 헌재가 여러 학술기관에게 용역을 줘 얻은 결론이었다. 헌재가 2004년 12월 한국공법학회에 용역을 의뢰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법 40조가 정당해산심판에 민사소송을 준용하도록 한 것은 입법적 오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정태호 경희대 교수는 "민사소송의 목적은 사인(私人)간의 법적 분쟁에서 사인의 사법적 권리를 확정하고 이 확정된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지만 정당해산심판절차의 목적은 정당이라는 조직화된 잠재적인 헌법의 적으로부터 개관적인 헌법을 수호하는 것으로 국가의 형벌권 실현을 통해 객관적 법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형사소송에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당해산심판과 민사소송간 유사성이 많지 않음에도 헌법재판소법 40조가 민사소송 관련 법령을 정당해산심판절차에 준용하도록 한 것은 입법상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 결과 현행법은 증거확보와 관련해 커다란 결함을 내포하게 되었다"며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정부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주요조직, 당 간부나 당원, 추종자들에 대한 강제적인 압수수색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해산 대상 정당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자료를 은폐하거나 파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헌법재판소법이나 민사소송 관련 법령 모두 이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며 "정당해산 절차에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헌법재판소법 40조를 개정해 형사소송법상의 증거확보를 위한 강제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는 지난해 6월 헌재가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때 그대로 채택됐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청구사건 소송대리인단이 지난달 5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에 답변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사진=조승희 기자)
 
이번 심판에서 통진당측을 대리하고 있는 변호인단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통진당측 대리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정당해산심판 사건은 정당에 대한 국가의 형벌권 행사이기 때문에 형사재판과 같이 봐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민사사소송 절차에 따라 증거조사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또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일반적으로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도록 한 헌법재판소법 40조 1항은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민사소송 절차를 준용하도록 제한 한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정당해산심판에 민사소송절차 규정을 준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와 같이 정당해산심판을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독일도 헌법재판소법에 정당해산심판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명문화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변호사는 이와 함께 "지난해 헌재가 헌법재판소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정당해산심판에 형사소송절차를 준용할 것을 제안했으면서도 지난 첫 공판준비기일 때 민사소송절차를 준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명백한 근거를 내놓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리인단 측이 몇 차례에 걸쳐 심리절차에 관한 원칙을 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여전히 기준이 서지 않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사건을 심리할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심판을 빨리 진행하는 데 급급한 것 아니냐는 인상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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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