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김병로' 서세 50년 뒤 사법부에 '독립'을 강조하다

입력 : 2014-01-14 오전 9:07:24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 서세 50주년을 맞아 대법원이 13일 추념식을 열었다.
 
1887년 12월15일 전북 순창 복흥면 하리에서 출생한 선생은 1964년 1월13일 간염으로 타계했다. 그 때가 향년 78세.
 
매년 선생이 기일이 돌아오고 있지만 이번만큼 대법원이 대대적인 추념식을 연 예는 없었다.
 
이번 추념식은 서세 5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사법부 독립 위기'에 대한 시대적 상황과 이에 대한 대법원의 각오가 오롯이 담겨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사법부 독립을 위한 선생의 투쟁을 추념사를 통해 상기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선생의 9년여의 대법원장 재임기간 동안 정치 권력 등 외부의 압력과 간섭에 단호히 대처하면서 사법부의 존엄과 권위, 그리고 독립을 확고히 한 것은 선생의 큰 공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재판 독립의 원칙은, 원칙과 대의를 저버리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일신의 안일을 내던지신 선생의 결연한 의지와 곧은 기개가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고 선생을 추모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13일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열린 '가인 김병로 서세 50주기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대법원)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도 추념식사를 통해 "무엇보다,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건국 초기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단호히 배격하여 사법권 독립을 확고히 함과 아울러, 절제와 청빈으로 모든 법관의 귀감이 되신 선생의 모습은 선생께서 사법부와 우리 공직사회 전체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했다.
 
선생의 사법부 독립을 위한 투쟁의 일화 중 단연 손꼽히는 사건은 '서민호 의원 살해 기도' 사건이다.
 
서의원은 1952년 자신을 살해하려 한 현역 대위를 사살한 혐의(살인) 기소됐다. 부산지법 1심 재판부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은 "도대체 그런 재판이 어디 있느냐? 현역장교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는데 무죄라니 될 말인가?"라며 격노했다. 서 의원은 자신의 정적이었다.
 
서슬이 퍼런 시절이었으나 선생은 의연했다. 선생은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죄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지 않는가"라며 이 전 대통령을 꾸짖었다.
 
이 일화는 선생이 사법부의 독립을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지켜낸 대표적인 일화로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외부의 간섭에 강경했지만 선생은 법관들에 대해서도 추상같이 엄했다. 특히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것을 강조하고 청렴한 법관의 삶을 지속적으로 강변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선생은 1957년 6월24일 열린 사법감독관 회동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우리 사법관들은 오직 정의의 변호자가 됨으로써 3천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법의 권위를 세우는데 휴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앞서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12일 열린 제1회 법관훈련회동에서는 "법관이 일반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법관으로서의 최대의 명예 손상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명예 실추는 법관 전체의 명예 실추가 되는 것입니다. 법관은 양심과 이성을 생명처럼 알아야 하며 이를 굳게 지킴으로써 법관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또 "사법관으로서의 청렴한 본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사법부의 위신을 위하여 사법부를 용감히 떠나야 합니다"라고 자주 강조했다.
 
선생은 그 역시 9년간의 대법원장 재임 기간 동안 반토막난 수정도장으로 결재를 하며 법관으로서의 청렴을 몸소 실행했다.
 
◇13일 대법관 1층 대강당에서 열린 '가인 김병로 서세 50주기 추념식'에 참석한 법조계와 정계 인사들이 묵념하고 있다.(사진제공=대법원)
 
이날 추념식에 참석한 한 부장판사는 "선생의 말들과 일화는 그동안 고위 법관 취임식에서도 자주 인용되어 왔다"며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법관들에게 사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황찬현 감사원장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진태 검찰총장,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전직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유족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해 선생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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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