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현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에 명운을 걸면서 채용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통상임금 판결이 나면서 기업이 떠안아야 할 비용 부담은 더 커졌다. 긴축경영으로 돌아선 마당인지라 이들의 한숨소리도 커졌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통해 고용률 끌어올리기에 시동을 걸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하루 4~6시간 일하고, 임금은 근로시간 기준으로 전일제 근로자와 동일하게 지급토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경력 단절의 여성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당연히 기업들은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업무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비용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 정부가 고용률 70%라는 수치에만 목을 메면서 기업의 자율성마저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때문에 현장 반응은 시원치 않다. 외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54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간선택제를 도입해 이미 채용에 나섰거나 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기업은 17.5%에 그쳤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적합한 직무가 서비스·유통분야로 제한돼 있는 데다 생산성이 저하될 것을 극히 우려하고 있는 눈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 경우 매달 지급해야 하는 인건비가 느는 반면 직원들의 애사심이나 업무 집중도는 낮아질 것"이라며 "10대그룹이 채용에 나섰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눈치를 보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관계부처 장관들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이 두드러진다며 여성의 생애주기별 모성보호, 보육, 돌봄, 재취업 지원 및 일-가정 양립 문화를 조성해 경력단절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현오석 경제부총리. ⓒNews1
지난 4일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지원 방안에 따르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경우 첫 달 육아휴직 급여가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원)로 확대되고, 육아휴직을 앞둔 비정규직과 재계약하는 사업주에게는 계속고용지원금이 지급된다.
또 국공립 어린이집이 매년 150곳씩 신설되고, 모든 초등학생에게 오후 5시까지 방과 후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육아 때문에 경력을 포기한 고학력 여성의 재취업을 위해 별도의 채용 과정도 마련된다.
기업들은 이 같은 정부의 정책 제안에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우선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비용을 지원할 예정이다. 고용보험기금은 기업과 근로자가 매달 총보수의 0.55%씩, 총 1.1%를 조성한다. 노사의 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셈이다. 고용보험기금이 부족할 경우 정부 일반회계 출연도 병행할 방침이다. 고용주체인 기업도 일부 부담해야 한다.
정부도 기업이 떠안아야 할 부담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이번 대책이)민간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기업도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위에서 하라고 하면 무조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 부담을 기업이 다 떠안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수 십년간 유지돼 온 임금체계까지 바뀐다. 지난해 말 대법원이 정기적 성격을 띤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재계가 술렁였다. 기업의 임금 부담이 늘 뿐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도 크다는 게 재계 주장이다.
경총은 법원의 판결대로 통상임금이 적용될 경우 연간 8조8000억원의 추가비용 부담이 발생하고, 매년 최대 9만6000개의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경제의 투자와 고용, 수출감소가 이어지고 근로자간 임금 양극화와 노사간 분쟁도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도 통상임금 확대로 올해 수출이 약 9158억원~8조원 범위에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임금 상승과 노동비용의 증가로 인한 제조원가 상승, 외국인투자 유치 감소 등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통상임금 소급적용 여부를 놓고 재계와 노동계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통상임금의 범위와 해석에 대한 의견이 다른 데다 기업들 상황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법원 판결을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고용노동부가 산업 현장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내놨는데 오히려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되고, 소급해서 받을 수 있는 임금 범위가 줄어든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려는 사측의 편법을 조장할 여지가 크다"면서 "고용노동부가 먼저 해야 할 것은 기존 통상임금 예규의 즉각적인 폐기"라고 지적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 노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입법적 보완과 사회적 대화를 병행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