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정당해산심판을 진행 중인 정부가 권성 전 헌법재판관(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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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전 재판의 경력을 살펴보면 현직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4명과 직간접적으로 크고 작은 인연이 있다.
9명 중 4명은 헌정사상 처음 진행되는 정당해산심판과 관련해 절대적인 숫자다. 정당해산은 9명 중 6명의 찬성으로 결정되며 이번 사건과 같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재판관 한명 한명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먼저 김이수 재판관은 권 전 재판관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때 배석판사였다. 두 사람은 1982년 대전지법 형사1부에서 함께 근무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법부에서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는 매우 각별한 사이다. 재판진행은 물론 법리구성, 법관생활 등과 관련해서도 도제식에 가까운 교육을 받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이수 재판관 초임 법관시 부장판사
더욱이 권 전 재판관은 김 재판관이 군법무관을 마치고 처음으로 법관으로 임용돼 만난 부장판사였다.
김 재판관은 현재 재판관들 중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권 전 재판관의 등장은 이런 김 재판관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기석 재판관도 권 전 재판관과 인연이 깊다. 서 재판관이 1991년 서울고법 배석판사 시절 권 전 재판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겸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였다. 두 사람이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관계로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서 재판관과 권 전 재판관의 인연은 2000년에 다시 시작된다. 권 전 재판관은 2000년에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돼 임기를 시작했고 서 재판관 역시 같은 시기에 서울중앙지법 판사로서 헌재에 파견돼 근무를 했다.
조용호 재판관도 권 전 재판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김 재판관처럼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로 만난 적은 없지만 상당기간 같은 기관에서 근무했다.
우선 조 재판관이 서울고법 배석판사 시절이던 1991년 권 전 재판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겸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 판사였다. 이후 조 재판관이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를 시작한 1993년에 권 전 재판관은 법원행정처 수석사법정책연구심의관으로 대법원에서 함께 근무했다.
◇조용호 재판관 행정법원 부장 판사시 법원장
조 재판관이 행정11부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에 권 전 재판관은 행정법원장으로 조 부장판사의 상관이었다.
이진성 재판관도 권 전 재판관과 인연이 없지 않다. 법원 재직시 같은 기관에서 함께 근무한 적은 없으나 두 사람은 서울 경기고 동문에 같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권 전 재판관이 지난달 27일 연임 중이던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직을 돌연 사임한 배경을 두고도 비슷한 지적이 제기된다. 당시 권 전 재판관은 임기를 불과 2개월 앞둔 상황에서 뚜렷한 배경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일 권 전 재판관이 정당해산심판에서 정부측 대리인으로 결정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것도 바로 다음날이 통진당 해산심판 첫 공판일이어서 정부가 공판에 임박해 권 전 재판관을 급하게 선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권 전 재판관이 사임한 뒤 언론중재위원장은 지금까지 공석 중이다.
◇심판 첫 공판서 "통진당 전략은 정명가도" 주장
권 전 재판관은 법관시절 판결문에 종종 한시(漢詩)를 인용할 정도로 한학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차 공판 당시 권 전 재판관은 정부측 대리인으로 나서 모두 발언에서도 여러 역사적 사례를 예로 들며 "통진당의 기만 전략은 한마디로 양두구육이며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장한 정명가도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또 진보적 민주주의를 '트로이 목마'라고 규정짓고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정당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고 소속 의원들의 직무 활동을 정지시켜 트로이 목마가 성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학을 인용한 권 전 재판관의 판결 중 일명 '항장불살(降將不殺)' 판결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그는 서울고법 형사1부장 시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내란목적 살인 등의 이유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한 원심을 깨고 전씨를 무기징역, 노씨를 징역 17년으로 감형하면서 "자고로 항장(降將)은 불살(不殺)이라 하였으니 공화(共和)를 위하여 감일등(減一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전씨와 노씨는 군인의 신분으로 헌법상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정권을 무력으로 쟁취한 '역모의 장수'로서 이후 '왕'인 대통령까지 나란히 지낸 인물들이다. 승장(勝將)이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항장(降將)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