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제외된 자산총액 5조원 이하 49개 그룹이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삼성, 현대차 등 상위 43개 재벌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경제민주화법이 일감몰이 규제대상을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51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으로 한정하고 있어, 그 이하 재벌그룹들은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부를 대물림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게 된 데 따른 것.
자산규모를 일부러 늘리지 않고 5조원 이하로 유지하면서, 증식과 대물림을 한 뒤 다시 덩치를 키우는 일부 기업의 편법 행태도 나타날 우려가 커졌다.
26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자산 기준 국내 100대 그룹 상장사와 비상장사 2332개사의 대주주 일가 지분율을 전수 조사한 결과, 공정위의 감시대상 계열사 비중은 43개 기업집단(13%)보다 하위 49개 그룹이 17%로 더 높게 나타났다.
비상장사는 대주주 일가의 지분공시가 상시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연말 및 분기에 발표되는 최신 보고서에 명기된 지분율을 반영했으며, 해외 계열사는 제외했다.
100대 그룹 중 자산 5조원 이하의 49개 그룹은 814개 전체 계열사 중 138개사(17.0%)가 공정위가 정한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 기준을 넘어섰다. 상장사가 121곳 중 34개사, 비상장사는 693곳 중 104개사였다.
일감몰이 규제대상인 43개 기업집단은 상장사 223개사와 비상장사 1296개사 중에서 각각 32개사, 165개사 등 총 197개사(13.0%)가 대주주 일가 지분율 한도를 초과했다.
일감몰이로 막대한 자본 이득을 챙기는 재벌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자 법이 제정됐지만, 정작 감시대상 계열사 비중이 더 높은 하위 그룹들은 규제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법의 사각지대로 방치됐다.
하위 49개 그룹 중 공정위 규제 감시대상 기업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대한유화와 경방이었다. 대한유화와 경방은 계열사가 4개와 2개에 불과하지만 대주주 일가 지분율 기준을 초과한 비중이 50%에 달했다.
오뚜기와 SPC가 각각 42.9%, 40%로 3, 4위를 기록했고, 이어 넥센(36.4%), 희성(35.7%), 고려제강·일진(33.3%), 무림(30.8%), S&T(30%) 등도 30%를 넘었다.
반면 네이버, 동아쏘시오, 영원무역, 대신 등은 대주주 일가 지분율 기준을 초과한 계열사가 하나도 없어 대조를 보였다.
43개 재벌집단에서는 부영과 한국타이어가 각각 16개의 계열사 중 9개사(56.3%)가 공정위 규제대상에 해당돼 비중이 가장 높았다. KCC도 10개사 중 5개 계열사가 대주주 일가 지분율 규제 기준을 넘어섰다.
반면 현대중공업, 금호아시아나, 동국제강, 한라, 한국투자금융, 한솔 등은 대주주 일가의 지분이 공정위 규제 기준을 초과한 계열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규제 대상 계열사 비중이 10% 이상인 기업만 보더라도 상위 43개 기업집단은 22개 그룹(51.2%)이지만, 하위 49개 그룹은 37개 그룹(75.5%)이나 해당돼 수나 비율 면에서 상위 집단을 압도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공정위 감시대상에서 제외된 100대 그룹 내 하위 그룹들도 대주주 일가의 기업지배 구조와 자산 증식 방법이 재벌과 다르지 않다”며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단순히 자산총액 5조원 잣대로 못 박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재벌의 탈법적 자산 증식을 막는다는 당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