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日 소비세 인상 D-1..정부는 돈 풀고 국민은 사재기

아베노믹스 실패 불안감에 금 수요 급증
정부 부양책에도 서민 한숨 깊어져
"일시 침체 후 반등한다" vs "임금 인상 없이 회복 궤도 못 올라"

입력 : 2014-03-31 오후 3:19:22
[뉴스토마토 우성문기자] 일본의 소비세 인상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4월1일 일본의 소비세는 현재의 5%에서 8%로 인상된다. 이는 지난 1997년 이후 17년만의 인상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내년 10월까지 소비세를 1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 곳곳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금 수요 역시 급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소비 열풍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소비세 인상이 시작되면 일본 경기가 다시 어두운 침체의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돈을 풀고 있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17년전 세금이 인상됐을 때의 악몽을 떠올리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의 추가 부양책이 결국 기업들만 살찌우고 서민들에게는 더 큰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 주말 사재기 열풍..금 판매량도 폭증
 
소비세 인상을 앞둔 마지막 주말 일본 도심에서는 물건을 싸게 구매하려는 소비자들과 이를 겨냥한 기업들의 판촉 행위가 기승을 부렸다.
 
슈퍼마켓과 할인매장 등에서는 화장지, 목욕용품, 애견용품 등 생필품들의 가격이 오르기 전에 대량으로 구입하려는 소비자들로 북적거렸다.
 
유통업체들도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당장 구입', '어차피 살 것이라면 지금 '등의 자극적인 홍보 문구를 내걸고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또한 학생들은 지하철 요금 인상을 앞두고 미리 정기권을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일본의 한 할인매장에서 쇼핑하고 있는 소비자 (사진=로이터통신)
 
아울러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수요 역시 급증했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금으로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일본 도쿄 긴자에 위치한 귀금속 판매업체 '긴자 타나카'에서는 지난 한 주간 이런 금 사재기 열풍이 두드러졌다.
 
지난주 이곳에서는 500그램 금괴를 사려는 사람들이 3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발생했고 회사 측은 일본 전역의 7개 점포에서 이번달 금 매출이 500% 폭증했다고 밝혔다.
 
닉 미즈키 타나카 귀금속 사업본부장은 "지난주 한주간 몇백 명의 고객들이 긴자의 플래그쉽 스토어에서만 500그램 금괴를 매일매일 사갔다"며 "120년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금 사재기 현상은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나타났다.
 
미쓰비시 UFJ 은행이 운용하는 '금 열매(Fruit of Gold) ETF가 보유한 금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집권이 출범한 지난 2012년 12월 5.6톤에서 현재 6.9톤으로 급증했다.
 
도시마 이쓰오 금 시장 전문가는 "금 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단순히 소비세율 인상 때문은 아니다"며 "투자자들은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것"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 재정 지출 앞당겨..6월말까지 年지출 40%, 9월말까지 60% 집행
 
소비세 인상으로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자 일본 정부는 돈을 푸는 추가 부양책들을 내놓고 있다.
 
먼저 일본 정부는 재정 지출을 앞당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 28일 "6월 말 40% 이상, 9월 말에는 60% 이상 예산을 조기 집행할 것"라며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지난해보다 예산 집행 속도를 앞당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가계 지출이 침체된 모습을 보이자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같은날 발표된 지난 2월 가계 지출은 2.5%나 하락하며 6개월 만에 첫 감소세를 보인 바 있다. 
 
같은 기간 근원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1.3% 상승하며 9개월째 오름세를 이어갔지만,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지 않다.
 
◇일본 가계 지출 추이 (자료=investing.com)
 
또한 일본 정부는 최근 "증세로 늘어난 수입 5조엔은 모두 육아·의료·간호·연금 등 사회보장 정책에 사용할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아울러 앞서 소비세 인상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5조5000억엔 규모의 재정대책과 추가 금융 완화 카드를 이미 준비해 뒀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의 천문학적인 부채는 이같은 재정 대책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1000조엔을 넘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240%에 달하는 등 선진국 중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법인세를 인하하는 방안 역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법인세율은 36%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높은 법인세율로 기업들의 투자를 제한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전문가들은 일본은행(BOJ)이 이르면 5월 늦으면 7월에 추가 자산 매입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17년 전 세금 인상 '악몽' 재현 우려..서민 부담 커지고 대기업만 부양책 수혜?
 
정부의 이러한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17년전 세금 인상의 후유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가 소비세를 3%에서 5%로 올린 후 일본 경제는 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해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1998년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까지 겹쳐 일본 경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고 결국 같은해 7월 하시모토 총리는 실각하기에 이른다.
 
소데가와 요시유키 덴수 이노베이션 인스티튜트 연구원은 "지난번 소비세 인상 때에도 정부의 노력들이 있었지만 서민들의 조세 부담을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역시 지난 30일 '한숨의 봄'이라는 기사를 통해 공공요금 가격 인상을 소개하며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됐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의 엔화 약세 정책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미 생계의 압박을 느끼는 서민들의 어깨에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비세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법인세 인하 조치에 대해서도 일본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특히, 이러한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들에게는 특혜를 주고 서민들의 어깨에는 조세 부담을 얹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 중소기업연합회는 "법인세율 인하로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면 이 계획에 반대할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소비세 인상의 후유증으로 일본의 2분기 경제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 하지만,  3분기에 일본 경제가 얼마나 이를 빨리 극복하고 반등하느냐에 따라 아베노믹스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미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버블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아베노믹스는 소비세 인상 후 어느정도 경제 성장을 하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일본의 고용 상황은 1997년보다 훨씬 개선됐기 때문에 소비세 인상 후 일본 경제가 일시적으로 둔화될 수는 있지만 다시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야자키 히로시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1997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BOJ가 양적완화를 펼치고 있고 정부 역시 소비세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경기 둔화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마가이 미쓰바루 다이와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시 "소비가 4월에 급감했다가 늦어도 여름에는 증가세를 나타내기 시작해 7월에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에 비해 턱없이 느린 것을 지적하며 일본 경제가 둔화된 후 오랜 기간 회복궤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아베 총리는 경기가 회복돼 임금이 인상되고 결과적으로는 물가가 상승하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단계인 '물가 상승'에만 집착하고 있고 임금 상승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마셀 틸리안트 캐피탈이노코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임금 상승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소비세 인상은 가계 소비의 동력을 꺾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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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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