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기자]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정부와의 갈등이 격랑에 빠졌다.
의협은 23일 오전 7시 제5차 상임이사회 회의를 열고,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오는 24일까지 원격의료에 대한 방안을 제출하라는 복지부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의료계 노조와 시민사회, 야당 등이 의료민영화의 전초 단계로 원격의료를 규정한 가운데 의협마저 그간의 내분을 마무리하고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대정부 투쟁 노선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 16일 진행된 의·정 합의 이행추진단 회의에서 양측의 이견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않았고, 이에 복지부는 논의 중단과 함께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의협은 원격모니터링에 대한 복지부의 설명을 듣기 위해 의료계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설명회를 요청했지만, 21일 열릴 예정이었던 설명회는 의료계 내부의 강한 반발로 전격 취소됐다.
원격의료 시범사업 설명회에 대해 전국의사총연합, 대한평의사회 등은 "설명회 진행을 시작으로 복지부가 원격의료를 밀어붙일 것"이라며 실력행사를 감행해서라도 저지할 뜻을 분명히 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같은 뜻을 밝히며 의협 신임 지도부를 압박했다.
이에 의협은 "원격의료 설명회가 자칫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에 대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많은 회원의 우려에 공감하고, 그러한 회원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기 위해 원격의료 시범사업 설명회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내부반발에 굴복한 것이다.
그러면서 단일대오 체제가 갖춰졌다. 의협은 현재 입법 발의된 원격의료 법안과 함께 지난 22일 입법예고가 종료된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을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저지해 나갈 예정이다.
이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보건의료단체가 공동으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추무진 의협 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는 진료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법안"이라며 "원격의료 시범사업으로 의료 영리화가 추진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간담회 이후 추 회장을 비롯한 각계 대표자들은 의료영리화 정책의 중단과 의료영리화 방지법안의 통과, 의료공공성 강화 등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대국민 공동 약속을 선언했다.
의협은 정부가 두 차례의 의·정 합의를 깨고 원격의료 법안 발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등 기존 방침을 강행함에 따라 더 이상의 기대보다는 강경대응 방침으로 선회했다. 명분을 손에 쥐게 된 데다 여론의 뒷받침도 있어 기조 변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4일 추 회장이 의협회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첫 면담을 통해 협력을 논의했지만, 열흘도 되지 않아 갈등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대한의사협회 전경. (사진=뉴스토마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