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국내 유일의 학자출신 대법관이었던 양창수(63·사법연수원 6기) 대법관이 5일 6년간의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다.
양 대법관은 이날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와 '상고사건 부담의 경감'을 꼽았다.
그는 퇴임사에서 "두 사법기관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일반에게 비치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결코 이롭다고 할 수 없다"며 "대법관으로서의 경험으로 말하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는 단순히 두 기관의 호양적 관행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조속하고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
사상고사건의 부담에 대해서도 "대법원 본안사건만 하더라도 2013년 3만6000건에 이르렀고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며 "더 이상의 '무리'가 있기 전에 이쯤에서 상고심의 지위와 기능에 대해 본원적인 반성·검토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대응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양창수 대법관이 5일 오전 11시 대법관 중앙현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대법원)
다음은 양 대법관 퇴임사 전문이다.
2014년 9월 양창수
대법관 퇴임사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그리고 이 자리에 와 주신 법원 가족 여러분,
저는 이제 대법관의 임기를 마치고 대법원을 떠납니다.
지난 6년을 돌아보면 물론 여러가지 감회가 없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한 분의 대법원장과 열세 분의 대법관으로부터 퇴임의 말씀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은 대체로 한편으로 개인적인 대법원 생활의 희고, 그리고 대법관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현재 우리 법원 또는 법관의 현실에 대한 통찰,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법의 발전을 위해 법관들이 달성해야 할 과제에 대한 여러가지 희망적 소견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들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다시 그 요점을 반복해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조각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종전에 별로 말씀되지 않았던 것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대법원이 제도적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로 무엇보다도 두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첫째가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이고, 둘째는 상고사건 부담의 경감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결정 등을 통해 법률의 해석에 대한 영향을 넓히려고 시도하고 있으나, 헌법재판소법도 법률인지라 종국에는 그 내용, 예를 들면 위헌결정에 대한 47조의 의미 여하도 대법원의 해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법의개별 규정이 위헌임을 선언하는 일도 전혀 상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부터 배제하는 헌법재판소법 제 66조 제1항에 대해 한정위헌결정을 한 바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흔히 보는 바와는 달리 두 사법기관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일반에게 비치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결코 이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법관으로서의 경험으로 말하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는 단순히 두 기관의 호양적 관행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대법원에의 상고는 본안사건만 하더라도 2013년에 3만6000건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대법원에 온 2008년에는 그것이 2만8000건으로 그 동안에도 증가 일로에 있었으나 사건처리의 부담도 이 수준에 이르면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더 이상의 '무리'가 있기 전에 이쯤에서 상고심의 지위와 기능에 대해 본원적인 반성·검토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대응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드린 이 두 가지의 제도적 문제는 더 이상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법치주의의 원만한 실현 및 국민들의 권리보호의 신장이라는 나라의 기본 과제와 관련됩니다. 따라서 이들에는 모든 국민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국회 기타 정치권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그리고 이 자리에 와 주신 법원 가족 여러분,
그리고 대법관의 일과 관련해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의 하나는 대법관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의 하나는 개별사건 중에서 일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사건이 대법원에서 이렇게 저렇게 처리됐다는 사실은 이제 하나의 전범성(典範性)을 가져서 '같은 사건'은 이제 같이 처리돼야 하는 '구속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하급심 법원은 물론이고 대법원에 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도 '같은 것은 같이,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정의(正義)의 제1차적 요구에 묶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리 불속행으로 상고기각되는 사건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법관은 그 구체적인 사건과 '같은 사건'이 얼마나 있는지 또는 -보다 중요한 것으로-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 사건의 해결내용 여하가 개별 당사자들을 넘어서 그와 같은 이해관계 또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 같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나아가 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한 부분 또는 전체, 심지어는 나라 자체의 됨됨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판례'를 많이 알고 있다거나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자질로서 오히려 감수성 또는 상상력의 문제, 결국 사회에 대한 인식 틀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은 그 해결을 개별 기록을 접하였을 때 얼핏 가지게 되는 그 사건 해결의 방향에 관한 자기 개인의 '감각'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이를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사건과의 '거리'가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치고 다른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보다 신중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저 밀려드는 배당사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골라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의 업무 수행에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그리고 이 자리에 와 주신 법원 가족 여러분,
이제 대법관으로서의 시간을 마감하면서 간절히 느끼는 것은 지난 6년이 제게 부여한 성취와 발전의 기회에 대해서 입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오래 대학교수로 있었습니다. 저는 교수로서 이루려고 했던 바는 모두 결국은 법 실천의 현장으로 연결돼 '현재 있는 법'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부족하나마 성취할 기회가 주어지고 또 상고심법원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매우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늘상 저를 도와 주셨던 분들에 대한 감사의 뜻입니다.
대법원장님이나 동료 대법관님들로부터 제가 배운 것은 일일이 다 들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또한 여러가지로 모자란 저를 따뜻하게 감싸고 아껴 주신 것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전속조와 공동조의 많은 재판연구관님들이 없었다면 저는 그나마 부족한 자질과 능력으로 도저히 대법관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몇 분은 특별히 여기서 이름을 밝히고 싶습니다.
서류와 기록 작업에 관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정확성과 성실함으로 일해 준 마경희 씨,
매일 아침 나에게 차를 가져다 주고 연필을 깎아 준 정여울 씨,
이제는 애기 엄마가 돼 다른 법원에서 일하는 황미경 씨, 날로 달로 새롭게 쌓이는 책 기타 자료들을 군소리 없이 정리하고 처리해 준 양대로 씨, 저에게는 그 이름도 낯선 '비서관'으로 번덕스런 저의 요청을 일일이 들어주신 염영철 서기관, 지금의 박수철 사무관,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저를 이리저리 태워다 준 김광성 기사, 조광영 기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대법관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만 물러갑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빌면서, 이만 퇴임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