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4’를 통해 2세대 스마트워치들이 대거 선보여졌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스마트 기기와 패션 사이의 애매한 정체성이 채 정리되지 못한 모양새다. 시장 1위
삼성전자(005930)의 ‘기어S’조차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넘어 씁쓸하기까지 하다.
지난해 ‘갤럭시 기어’로 대표되는 1세대 스마트워치는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킬러 앱의 부재와 예전 전자시계를 연상케 하는 단조로운 디자인이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익숙한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한 기능들을 넣은 천편일률적인 직사각형의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럼에도 제조사들은 스마트워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한계를 체감한 이들에게 스마트워치는 다음을 기약하는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이 지난해 9월 갤럭시 기어를 시작으로 총 6종의 스마트워치를 선보이며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져온 점은 도전과 선도 면에서 분명 박수를 보낼 만하다. 그 결과 올 1분기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워치 시장점유율은 무려 74.1%를 기록했다. 압도적이다.
이달 독일에서 폐막한 IFA는 스마트워치의 격전장이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066570), 소니 등 내로라하는 제조사들이 스마트워치를 쏟아냈다. 애플도 미국에서 별도로 진행한 행사를 통해 아이워치를 꺼내들었다. 제품 홍수 속에 저마다 자신의 특장점을 내세우며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되돌아온 반응은 여전히 ‘혁신의 부재’였다.
이 점이 현재 스마트워치 시장이 가지는 한계이자, 한 해 300%에 육박하는 폭발적인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공급자만 노는 시장’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는 소비자는 이미 너무 ‘스마트’해져 있다. 스마트워치가 시장의 혹평을 받는 제일 큰 이유는 애매한 정체성에 있다. 단적인 예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장 1위 삼성전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워치 분야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번 IFA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LG전자가 세계 최초 원형 디스플레이로 디자인 측면을 강조하며 ‘시계를 대체할 제품’으로, 새롭게 시장에 뛰어든 애플이 ‘개인형 맞춤기기’로 나름의 포인트를 잡은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과욕을 부리다 어느 한 쪽도 완벽하게 공략하지 못한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기어S가 이달 초 국내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디자인 선호도 조사에서 완패를 안겨준 LG ‘G워치R’와의 비교에 속이 쓰렸는지 “기술적으로 원형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제품에 탑재된 다양한 ‘스마트 기능을 활용하기 최적화된 모양’으로 선보였다”고 말했다. 본질인 스마트 기기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능 활용의 최적화를 위해 적용했다는 곡면 디스플레이는 미적 관점에서 약간의 기여도가 있을 뿐 제품 터치에 방해만 된다는 것이 기어S를 직접 경험한 주변의 반응이다. 또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뉴욕의 패션 위크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 디젤, 스왈로브스키 등 패션·주얼리 브랜드들과의 협업에 기어S를 전면에 내세운 점도 삼성전자가 말한 ‘스마트 기기 활용의 최적화’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삼성이 업계 1위 수성과 매력적인 스마트워치 시장 장악을 위한 고민의 흔적은 역력하지만 장고 끝에 내린 과욕이 결과적으로 독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스마트워치 시장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도 오지 않았을 뿐더러 제품 자체가 가진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기어S에 드러난 한계가 삼성전자가 업계에서 차지하는 입지를 단 번에 뒤흔들 것으로 보는 이들도 찾기 어렵다.
현재 스마트워치 시장은 서서히 실험단계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경쟁을 앞두고 있다. 국내 기업인 LG전자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업체는 물론 글로벌 라이벌인 애플마저 시장에 뛰어들며 전면전을 예고했다. 향후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독보적인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삼성전자는 제품의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제품 스펙과 디자인이 소폭 개선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 기기와 패션제품 사이에서 방향성을 잃고 헤매다 삼성 스마트워치의 본질적 매력까지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스마트워치가 스마트폰의 혁신을 잇지 못하고 아날로그 시계의 감성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제조사만의 탓은 아니다. 어쩌면 타 제품과의 호환을 통해 빛을 발하는 스마트워치가 갖는 자체적 한계일 수도 있다. 때문에 과욕보다는 방향성이 선행돼야 한다. 삼성전자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를지 말지는 시장의 몫이다.
삼성전자에게 현 시점에 필요한 것은 너도나도 갖춘 부차적인 스마트 기능을 무리하게 집어넣기보다 제품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아날로그 나침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