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한국은 올해도 노벨문학상과 인연이 없었다. 지난 9일 발표된 2014년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전업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69)에게 돌아갔다. 모디아노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기의 생활 세계를 드러내고, 불가사의한 인간의 운명을 기억의 예술로 환기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모디아노가 노벨문학상을 탄 건 프랑스인 작가로 11번째,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작가로서는 14번째이며, 프랑스 국적으로는 15번째다. 국적별 노벨문학상 수상 횟수는 프랑스에 이어 미국(12명)과 영국(10명)이 뒤를 따르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언어별로는 영어가 27명으로 가장 많다. 프랑스어에 이어 독일 13명, 스페인어 11명, 스웨덴어 7명, 이탈리아어 6명 등 유럽 지역 언어를 쓰는 작가들이 강세다. 프랑스 남부 지역 언어인 프로방스어(Occitan) 작가도 1명이다.
동아시아 언어를 쓰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은 중국어 2명, 일본어 2명에 불과하다. 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와 오에 겐자부로(1994)가 수상했고, 중국의 경우 지난 2000년 가오싱젠이 수상했으나, 그는 지난 1988년 프랑스로 망명한 작가다. 모옌(2012)이 유일한 중국인 수상 작가다. 이밖에 터키어, 아랍어, 이스라엘어, 히브리어 작가는 각각 1명씩 수상했다.
◇한국문학 번역출간 현황.(자료=한국문학번역원)
◇번역 출간 많아야?.."번역의 질을 높여라"
이처럼 지난 1901년부터 올해까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111명 대부분이 영어와 프랑스어 등 유럽 지역 언어를 쓰는 작가가 휩쓸고 있다. 특히 한국인 작가가 상을 받으려면 번역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10년 이상 거론됐고, 황석영 작가도 언급됐으나 올해도 비켜갔다. 고은 시인의 작품은 18개 언어권에 73종이 번역됐고, 황석영 작가의 경우 16개 언어권에 59종이 소개됐다. 이번에 수상한 모디아노의 소설은 36개 언어로 번역됐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언어 문제 탓만은 아니지만 그것의 영향이 전혀 없진 않다"며 "노벨 문학상을 받으려면 영어로 번역한 것과 노벨상을 결정하는 스웨덴 언어로 된 게 있을 때 훨씬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문학 작품은 원작의 언어가 담은 정서를 최대한 온전히 옮겨야 감동을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번역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작품을 번역한 사례는 양적인 측면에서도 부족한 형편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번역을 지원한 사례는 올해 현재 30개 언어권 975종이고, 출판지원의 경우 28개 언어권 693종에 불과하다. 김윤진 번역원 번역출판본부장은 "일본에 번역 문학 작품 수를 문의해보니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번역출간 종수를 따질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중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외국 독자층이 넓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번역 관련 예산만 봐도 초라한 실정이다. 김 본부장은 "번역 관련 연간 예산은 40억원이 안 된다"며 "번역원의 번역 전문인력은 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러시아어권에 걸쳐 15명이지만, 이는 내년부터 두 배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번역자가 한국을 잘 알고 작가도 잘 알아야 좋은 번역을 할 수 있으나, 그런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이 없다"며 "일본의 경우 국가가 양질의 번역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고 말했다.
◇"전업작가 생존 시스템 만들어야"
국내 문학작품의 번역 출간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전업작가 양성, 독서 인구 확대 등 독서문화에 대한 정부의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세계적 문학작품이 탄생하려면 작가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작가를 양성하고 세계 시장에 책을 유통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것. 모디아노도 40여 년간 전업작가로 활동했다.
정우영 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예술은 보호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태되기 쉬운데 문학은 그런 측면에서 지원이 없으면 도태되기 딱 좋은 분야다. 연간 지원액이 100억원 정도밖에 안 된다. 이는 부산 국제영화제 행사 한 번에 지원되는 금액보다 적다"며 "사람들이 사는 게 너무 힘드니 문학 쪽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진단했다.
백원근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오려면 문학적 탁월성과 완성도를 갖춘 전업작가들이 다수 존재해야 하는데 전업작가가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생업에 종사하면서 글을 쓰는 게 현실이다. 이래선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어렵다"며 "프랑스의 경우 문학상을 받은 자국 작품을 고등학생들이 읽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데 이런 노력도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부길만 한국출판학회 회장은 "노벨문학상은 대중 작가가 받기도 하고 프랑스의 사르트르는 수상을 거부하기도 하는 등 우리와 평가하는 개념이나 시각과는 조금 다르다"면서도 "지금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스포츠 분야도 많은 발전을 이뤄왔는데도 문학의 성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없다는 게 우리로선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노벨 문학상이 한 나라의 문학적 성과를 절대적으로 반영하는 상징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은 많은 예술 분야의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문학 시장의 내적 성숙을 우선 추구해야 세계적인 작가가 한국에서도 탄생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