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검찰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개시 신청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일단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위철환)로 공이 넘어간 상태지만 변협에서 어떠한 결정을 하든 그 결과에 따라 검찰 또는 민변은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변협 징계위원회가 징계를 결정할 경우에는 해당 변호사들이, 징계를 거부할 경우에는 검찰이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어 법무부까지 이번 사건의 범위 내로 들어오게 된다.
또 법무부가 변협 징계위의 징계청구를 받아들이거나 기각할 경우에도 그 결과에 따라 해당 변호사나 검찰은 법무부 결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법원 역시 이번 사건의 회오리 속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법조계가 자칫 ‘민변 변호사 징계 사건’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통째로 빨려들 위기에 놓여 있다.
통상 변호사 징계 개시 신청을 접수하게 되면 변협은 논점이 분명하고 변호사의 비위가 명확할 경우에는 변호사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사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형식상으로는 권영국 변호사 등 검찰이 이번에 기소한 민변 변호사 5명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징계개시 신청의 근거로 변호사법 97조2를 들었다. 이에 따르면, '지검 검사장은 범죄 수사 등 검찰 업무 수행 중 변호사에게 징계사유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대한변협회장에게 징계 개시를 신청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법리해석상의 문제가 있거나 징계신청 사유에 해당하는 비위로 보기 불분명한 경우에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을 확인하게 된다. 장경욱, 김인숙 변호사 등 기소되지 않은 채 징계개시가 신청된 민변 변호사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한편, 기소된 민변 변호사 5명에 대한 공소사실 역시 쌍용차 대한문 집회 등 집회 및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불법통제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재판 단계에서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도 "변호인의 변론권과 변호사의 진실의무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징계 개시가 청구된 민변 변호사 7명에 대해서는 모두 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실시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 가운데 장 변호사와 김 변호사에 대한 징계개시 신청은 기각 가능성도 상당한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검찰은 전날 이 두 변호사에 대해 의뢰인에 대한 거짓진술과 진술거부권 강요를 징계개시 신청 사유로 들었다. 변호사법 24조(품위유지 의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법 2항은 '변호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민변측은 검찰이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장 변호사의 경우 '북한 보위부 직파 여간첩 이모씨 사건'에서 장 변호사가 '보위부 문제는 모두 거짓이라고 진술해야 한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 근거로 여간첩이 진술을 종용했다는 취지로 국정원장 앞으로 쓴 편지가 있으며, 그 내용은 판결문에도 적시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민변측은 여간첩이 법정에서 이 진술을 다시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민변의 조영선 사무총장은 6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씨가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것은 맞지만 조사와 재판에 이르는 동안 진술을 번복한 과정을 일체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교도관이 일심회 사건 등 장 변호사가 변호한 사건들의 기사 스크랩을 보여주면서 '장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 중형을 받는다'고 했다고 이씨가 진술을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정원장 앞으로 보낸 편지 역시 교도관의 회유와 협박으로 쓴 전향서였다"며 "이 역시 이후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다시 번복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인숙 변호사에 대해서도 조 사무총장은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것을 뿐 허위진술을 강요한 것이 아니다"며 "검찰이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허위진술 종용이란 A를 B라고 말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김 변호사가 진술하지 말라고 한 강조한 것은 진술거부권 고지의 한 형태다. 그것을 마치 악의적으로 허위진술을 강요했다고 하는 검찰의 주장은 물타기요,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전날까지 침묵하던 법조계 일각에서도 검찰의 징계개시 신청이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변협 임원출신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법상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변호사의 비위가 발견됐을 때 징계개시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검찰의 '공익의 대변자'라는 본질적 기능을 신뢰했기 때문"이라며 "도가 지나치다, 판단을 받아보자는 식의 신청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협 임원 출신 변호사도 "기본적으로 검사와 변호사는 무기대등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사법상 기소되지 않은 변호사들까지도 징계 개시를 신청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검찰의 변호사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1차적 심리기관인 변협으로서는 "아직 어떤 일정도 정해진 바가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단 오는 10일 열릴 예정인 상임위원회에서 조사위 가동과 이후의 절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징계회부도 불분명한 상태다.
만일 위철환 변협회장이 조사위 결정을 토대로 징계회부를 거부하면 검찰로서는 더 이상 다툴 방법이 사실상 없다. 검찰로서는 '민변 길들이기', '사법정의 재갈물리기'라는 여론의 뭇매와 함께 또 한 번 구설에 오르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