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고인이 된 한 사무관의 노래

입력 : 2009-04-07 오후 4:49:22
[뉴스토마토 김종화기자] 어제 오늘 과천정부청사 1동 기획재정부 현관 로비에는 낯선 모금함이 자리잡았다.
 
'근조(謹弔)'라는 글자가 엄숙한 분위기의 조기(弔旗) 아래로 영정이 놓이고 방명록과 모금함이 함께 놓였다.
 
영정의 주인공은 지난 2003년 4월6일 기획재정부 세제실에 근무하다 과로사한 고(故) 이문승 서기관(사망당시 사무관)이다.
 
말단(?) 직원의 기일을 재정부 직원들이 챙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기억해서 좋을 것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일인데 재정부 직원들 만큼은 매년 이날을 꼭 챙긴다. 올해로 6년째다.
 
노조에서는 연중 이틀동안 로비에 모금함을 놓고 모금하고, 고 이 서기관이 근무했던 세제실 직원 가운데 일부는 아직도 매월 급여에서 일부를 자동이체로 갹출해 유가족에게 전달해오고있다.
 
재정부 세제실 한 직원은 "유가족들이 도움을 원하지 않지만, 당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계속 돕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 특유의 끈끈한 동료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모금에 동참하는 동료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동료가 과로로 먼저 갔지만 근무 환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별로 없어서다.
 
이러다가 또 다른 동료가 쓰러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여전하다.
 
한 관계자는 "주말 근무가 없어지는 등 당시보다 근무환경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솔직히 이대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솔직히 누구하나 쓰러질까봐 두렵다"며 "근무시간 중이라도 버텨내지 못할 것 같으면 어디 숨어서 한잠 자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건강을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에 대한 원망섞인 불만도 나온다.
 
한 직원은 "고 이 서기관의 형님이 당시 재정부 직원들에게 '재정경제부가, 가족적이고 인간적인 조직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조사(弔辭)를 남겼다"며 "(윤 장관이)그런 부처를 만들어주셨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렇게 보면 모금함은 열악한 근무환경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재정부 직원들의 `말없는 시위`이기도 하다.
 
고 이 서기관의 영정은 7일 오후 2시30분께 "로비에 조기가 놓여 있으면 드나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유로 과천청사관리소 직원들에 의해 깨끗이 철거됐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뉴스토마토 김종화 기자 just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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