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을 재판관 9명 중 8대 1의 압도적인 의견으로 결정했다. 소속 의원들 5명에 대한 의원직도 모두 상실시켰다.
헌법재판관 가운데 김이수(사진) 재판관 홀로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을 합헌으로 인정을 하면서 소신 있는 결정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재판관은 다만 심판청구의 적법성과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 정당해산심판의 사유에 대해서는 다수 의견과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 해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합헌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김 재판관은 이날 결정문에서 "정당해산의 요건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는 어떤 논리적 오류나 비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피청구인에게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점 자체가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정부)의 논증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은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 당원의 수만 3만 여명에 이르는 정당인데, 그 대다수 구성원의 정치적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 논증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중 극히 일부의 지향을 피청구인 전체의 정견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일부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머지 구성원도 모두 그럴 것이라는 가정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의 목적에 대해서도 김 재판관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는 "피청구인의 강령상 ‘진보적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른바 진보적 정치세력들이 수십년간 주장하고 형성된 여러 논리들과 정책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조합한 것으로서 광의의 사회주의 이념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며 "또 법정의견이 보는 것처럼 피청구인이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또 "피청구인이 현존하는 정치ㆍ경제 질서에 부정적 의사를 표시하고, 선거를 통한 집권 이외에 예외적으로 헌법질서가 중대하게 침해받는 경우에는 저항권에 의한 집권이 가능하다고 언급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폭력적 수단이나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수단으로 변혁을 추구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의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청구인이 사회주의적 요소를 내포하는 강령을 내세우고 있고, 북한도 적어도 대외적·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일정 부분 유사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피청구인이 북한을 추종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유사성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라며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정신과 시각이 북한과의 연계나 북한에 대한 동조라는 막연한 혐의로 좌절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북한 추종성이 곧바로 증명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재판관도 지난해 5월 경기도당 모임에서 이석기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활동을 통합진보당의 활동으로 동치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재판관은 "피청구인의 지역조직인 경기도당 행사에서 이루어진 활동은 비핵평화체제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피청구인 전체의 기본노선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피청구인이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그로부터 기본노선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므로 이를 피청구인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석기 등의 발언은 피청구인의 기본노선과 현저하게 다르고, 모임 참석자들이 피청구인 전체를 장악했다고도 할 수 없으며, 피청구인이 모임 또는 모임에서의 발언을 승인했다고도 볼 수도 없으므로, 모임이나 그 모임에서 이루어진 구체적 활동으로 인한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의 문제를 피청구인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김 재판관은 이와 함께 "정당해산제도는 비록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용도로 활용되어야 하므로 정당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선거 등 정치적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며 "이런 사정들을 종합할 때 피청구인의 해산은 정당해산에 대한 헌법상 요청을 충족시키지 못해 기각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이어 결정 말미에 "이같은 판단은 피청구인의 문제점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피청구인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대한 의연한 신뢰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정신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재판관은 전남 출신으로 전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사법연수원 9기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청주지법원장, 인천지법원장, 서울남부지법원장, 특허법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사법연수원장 재직 중인 2012년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