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2017년까지 외국인환자 50만명을 유치하기로 했다. 타국에까지 와 의료시술을 받는 '큰손'들을 유치해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심산에서다.
하지만 정부가 성급하게 외국인환자 유치에 나선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환자는 늘었다는데 내수시장이 회복될 기미는 안 보이고 외국인환자 증가를 경제활성화로 연결할 방안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리병원만 득을 보고 보건·의료 민영화의 걱정만 커진다.
5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외국인환자 수는 21만1218명으로 집계됐다. 4년 전 6만여명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것. 특히 우리의 주요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 러시아, 일본의 환자 수 1~4위를 기록했다.
◇연도별 국적에 따른 외국인환자 유치 실적(자료=보건복지부)
외국인환자에 따른 진료수입은 3934억원으로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86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평균 109만원이었다.
외국인환자 진료수입도 크지만 이들이 우리나라에 머물며 쓴 씀씀이도 그 못지 않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2013년 외국인 건강관광을 통해 번 수입은 2000억원을 넘었다.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2013년 기준 외국인환자로 인한 직·간접 수익만 6000억원이다.
이에 정부는 외국인환자 유치에 한껏 고무된 모양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외교부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건·의료산업 활성화 대책에는 외국인환자 병상비율 확대, 외국인 밀집지역 내 의료광고 허용, 글로벌헬스케어 시설 구축 등이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정부가 외국인환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과 달리 수익을 경제활성화로 연계할 방안은 마련하고 있지 않다는 점. 대책은커녕 보건·의료산업 활성화 대책에 참여한 부처 중 어느 곳도 외국인환자 유치에 따른 경제효과를 제대로 분석하고 있지 않다.
매년 외국인환자 유치실적을 조사하는 복지부조차 "외국인환자 유치는 거시경제에 통계적으로 플러스 효과를 미친다"는 원론적 수준에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인환자 증가를 억지로 경제활성화와 연결짓는 모습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용역 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의사 등 의료관련 종사자 수가 계속 늘어 외국인환자 증가에 따른 보건·의료산업 활성화의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전혀 엉뚱한 분석을 내놨다.
(사진=뉴스토마토)
정부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현재 외국인환자는 주로 해외 알선업체를 통해 들어오고 수익도 알선업체와 영리병원이 나눠 갖는 방식이다. 의료관광이라는 것도 대단한 게 아니라 요우커(遊客: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를 다른 말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외국인환자로 인한 직·간접적 수익은 6000억원이나 되지만 이를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되도록 관리하는 방식은 동네 구멍가게의 살림살이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진작은 물론 고용창출과 경제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는 셈. 외국인환자 유치에 따른 이익과 보건·의료산업 활성화의 수혜는 강남 등의 일부 영리병원과 대형병원의 몫이고 경제 낙수효과는 없다는 비관론이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의 태도를 수주대토(守株待兎: 나무에 토끼가 부딪혀 죽기만 기다린다)라는 말에 빗댔다. 아무 대책도 없이 외국인환자 유치를 통한 경제활성화라는 막연한 행운에만 기대 공연히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모양새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외국인환자를 통해 관련산업 육성과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려면 현황 분석과 객관적인 경쟁력 점검, 수요 예측을 통한 모델 정립, 정책방향 제시, 사후평가, 대안 마련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일단 시장부터 만들자고 달려든다"고 우려했다.
다른 쪽에서는 외국인환자 유치가 보건·의료 민영화와 의료자본 배불리기라고 주장한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정부는 장기입원 내국인의 입원료 부담을 높이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내놨고 13조원이나 되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내국인 환자 건강보험료 부담 완화에 쓰이지도 않는다"며 "지방 공공의료원마저 방만경영을 빌미로 폐쇄하는 마당에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는 의료자본의 배만 불릴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