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아베 방미 이후의 동북아와 ‘난파된’ 한국 외교

입력 : 2015-05-10 오후 9:34:44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달 29일 전후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다. 같은 패전국인 독일이 그간 다섯 번이나 했던 합동연설을 일본 총리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 것이다. 전후 70년이 되어서야 일본 총리의 연설이 가능했던 사실을 보면, 태평양전쟁의 상흔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미일관계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아베 총리는 연설 도중 10번 넘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함께 링컨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상의 밀월 상태를 연출한 셈이다. 미일동맹의 ‘21세기형 글로벌 동맹’으로의 진화, 미·일 양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기 타결,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한 공동방어망 구축,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시 미군의 적극 개입 등은 미일동맹이 새로운 동북아 질서 구축에 합의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사적인 ‘오바마-아베 공동 독트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일동맹은 중국과 대립노선을 선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해양 진출 시도로 인해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과 도서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노리는 해양 1000km까지의 제1열도선은 타이완, 오키나와, 필리핀을 포함한다. 2000km 지점인 제2열도선은 괌과 사이판까지 들어간다. 미·일 양국의 위기의식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내세우지만, 국방예산 부족으로 일본과 역할 분담이 불가결하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에 따라 일본 자위대는 세계 각지에서 언제 어디서나 미군, 프랑스군, 영국군 상관없이 후방 지원이 가능해진다. 자위대는 일본 국회에서 6월말 항구법이 제정되면 시도 때도 없이 출동할 수 있다. 주변사태 분쟁시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이 센카쿠열도를 침범하면 일본 해상자위대가 먼저 방어에 나선다. 미군은 분쟁시 중국 본토를 공격한다고 약속까지 했다. 분리되었던 주일미군과 자위대는 공동조정소를 설치해 긴밀한 연계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한국은 한반도 유사시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다. 전작권을 가진 미군의 요청으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경우, 한국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될지 보장할 수 없다.
 
무려 52개국이나 가입한 중국발 신(新)경제권역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중국~유럽 실크로드와 아시아·아프리카 해양권을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미·일 양국에 적잖은 위협이다. 고속철도·인프라 수출은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이다. 아시아에서 2010~2020년 내 10년간 8조3000달러로 인프라 수요가 넘쳐난다. 그러나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연간 예산은 약 300억 달러이고, 실제 투자까지 5년이나 걸린 적도 있다. 풍부한 자금과 신속한 투자로 본다면 AIIB가 분명 한수 위다. 날로 커지는 중국의 금융 패권을 막을 필요가 있다. 미·일 양국은 TPP를 밀어붙이고 있다. 미·일 양국이 12개 회원국 경제 규모의 80%나 차지한다. 쌀과 자동차만 합의하면 상반기 내 타결될 전망이다.
 
일본발 외교 위기라지만 미국, 일본, 중국의 실용외교가 국익 추구라는 민낯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외교 현장에서 한국의 활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둥회의 60주년 회의에서 중·일 정상들은 두 번째 악수를 했지만 한국은 없었다.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식에도 한국은 특사만 보냈다.
 
 필자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가장 큰 숙제는 한·중 ‘밀월’을 우려하는 미국 여론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8월 아베 담화가 식민 통치와 위안부 문제에 사죄할 리 만무하다. 박 대통령이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승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할지도 불투명하다. ‘미·중 양국의 러브콜은 축복’이라는 한가한 말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한국 외교의 위기는 표류가 아니고 난파에 가깝다. 당장 위기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현 위기를 초래한 외교라인 교체도 검토해야 한다.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와 한일 정상회담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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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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